영월 장릉 사진
사적196유적지조선 숙종 24년(1698)🌍 유네스코 세계유산 · 조선왕릉(2009년 등재)

영월 장릉

寧越 莊陵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기본 정보

지정 등급
사적196
분류
유적지
제작시대
조선 숙종 24년(1698)
지정 연도
1970
소재지
영월군, 강원특별자치도강원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영흥리)
좌표
37.195144, 128.454931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조선 6대 단종(재위 1452~1455)의 무덤이에요.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복위 계획이 발각돼 영월로 유배돼 그곳에서 떠났답니다. 단종이 죽자 시신을 거두는 이가 없었는데, 영월호장 엄흥도가 몰래 장사를 지냈어요. 숙종 24년(1698) 단종이 복위되며 무덤 이름을 장릉이라 했답니다. 병풍석·난간석 없이 소박한 후릉 양식을 따랐어요. 명릉 이후 등장한 사각지붕형 장명등이 이곳에서 처음 쓰였답니다. 충절을 다한 신하들의 위패를 모신 배식단사도 있어요. 2009년 다른 조선왕릉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답니다.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영월군의 다른 국가유산

설명

조선 6대 단종(재위 1452∼1455)의 무덤이다.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충신들이 그를 다시 왕으로 복위시키려는 계획이 밝혀져 영월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단종이 죽자 후환이 두려워 시신을 거두는 사람이 없었는데 영월호장 엄흥도가 장사를 지냈다. 중종 이후 조정에서 단종에 대한 제사와 무덤에 대한 의견이 나오게 되어, 선조 때에 이르러 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을 세우게 되었다. 숙종 7년(1681)에 노산군을 노산대군으로 하였고, 숙종 24년(1698)에 복위시켜 이름을 장릉이라 하였다. 무덤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았다. 능의 양식은 간단하고 작은 후릉의 양식을 따랐으므로 석물은 왜소하면서도 간단한 편이다. 명릉이래 만들어진 사각지붕형의 등인 장명등은 장릉에서 첫선을 보이게 된다. 특히 장릉은 무덤 제도에 의해 정해진것 외에 단종에게 충절을 다한 신하들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배식단사를 설치하였다. 정려비·기적비·정자 등이 있는 곳은 이곳 뿐이며, 모두 왕위를 빼앗기고 죽음을 맞이한 단종과 관련된 것들이다. 영월 장릉은 2009년에 조선왕릉 40기가 능원공간의 조형형식의 변화와 산릉제례가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오고있는 것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세계유산 등재 시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장릉 → 영월 장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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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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