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홍주읍성 사진
사적231유적·탑삼국시대

홍성 홍주읍성

洪城 洪州邑城

충청남도 홍성군

기본 정보

지정 등급
사적231
분류
유적·탑
제작시대
삼국시대
지정 연도
1972
소재지
홍성군, 충청남도충남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200-2번지
좌표
36.600626, 126.661640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약 1,772m 성벽 중 800m가 남은, 홍성 홍주읍성이에요. 세종 때 새로운 격식에 맞춰 쌓기 시작해 문종 1년(1451) 새로 고쳐 쌓았답니다. 둘레 약 1.5㎞, 높이 3.3m에 문 4개, 우물 2개를 갖췄다고 전해요. 동문인 조양문은 1975년 복원됐답니다. 흥선대원군이 쓴 '홍주아문' 글씨는 지금 남아 있지 않아요. 1905년 을사조약에 반대한 민종식 의병이 이곳에서 일본군을 격퇴한,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정말 유서 깊은 읍성이에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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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충남 홍성군에 있는 성으로, 길이 약 1,772m의 성벽 중 약 800m의 돌로 쌓은 성벽의 일부분이 남아있다. 처음 지어진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홍주성의 둘레와 여름과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는 고을의 읍성을 새로운 격식에 맞추어 쌓게 되었던 조선 세종 때에 처음 쌓기 시작하여 문종 1년(1451)에 새로 고쳐 쌓았다. 당시 성의 규모는 둘레가 4,856척(약 1.5㎞), 높이는 11척(약 3.3m)이며 문은 4개가 있었고, 여장·적대 등의 여러 시설이 설치되었으며 안에는 우물 2개가 있었다고 한다. 동문인 조양문은 현재까지 남아있고 1975년 복원한 것이다. 아문은 조양문의 문루를 설치할 때 함께 세운 것이며 ‘홍주아문’이란 글씨는 흥선대원군이 직접 썼으나 현재 남아있지 않다. 우리나라 아문 중에서 가장 크고 특이한 형태를 지니며 조선시대 관아의 구조와 형태를 살필 수 있는 자료가 된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의병을 일으킨 민종식 등이 이 성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공격하여 덕산으로 격퇴시킨 일이 있다. 2012년에 남문인 홍화문을 복원하였다. 이 곳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읍성으로 이어졌으며, 조선 초기 새로운 형식에 의해 쌓은 성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br/><b>※(홍주성(조양문,아문,산성) → 홍성 홍주읍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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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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