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양 옥룡사지
光陽 玉龍寺址
전라남도 광양시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사적 제407호
- 분류
- 유적지
- 제작시대
- 8세기초
- 지정 연도
- 1998년
- 소재지
- 광양시, 전라남도— 전남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302번지 외
- 좌표
- 35.047114, 127.605711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백계산에 자리한, 통일신라 절터, 광양 옥룡사지예요. 8세기초 창건됐고 선각국사 도선이 35년간 머물며 제자를 양성했답니다. 아홉 마리 용이 살던 연못을 도선국사가 다스려 절터로 삼았다는 전설이 전해요. 주변 동백나무숲과 차밭도 그때 조성됐다고 한답니다. 조선 후기 화재로 폐사됐지만, 발굴로 건물터와 도선국사의 것으로 짐작되는 유골이 확인된, 고승 장례 풍습을 알려주는 정말 귀중한 유적이에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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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광양 백계산(해발 505m)에 있는 옥룡사는 8세기초인 통일신라 때 창건된 것으로 전하며, 선각국사 도선<先覺國師 道詵>이 35년간(864-898) 머물면서 수백명의 제자를 양성한 유적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절터는 큰 연못이었는데 이 연못에 9마리의 용이 살면서 사람들을 괴롭혔다. 이에 도선국사가 용을 몰아냈는데 유독 백룡만이 말을 듣지 않자, 지팡이로 용의 눈을 멀게하고 연못의 물을 끓게 하여 쫓아낸 뒤 숯으로 절터를 닦아 세웠다고 한다. 주위의 동백나무숲은 절을 세울 때 땅의 기운이 약한 것을 보충하려고 꾸몄으며, 제자들의 심신수련을 위해 차밭을 일궜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조선 후기에 화재로 타 버려 폐사되었다. 조사결과 건물터와 명문비조각 90여 점을 찾았고, 도선국사의 것으로 생각되는 유골과 관을 발견하였다. 당시 고승들의 장례 풍습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br/><b>※(광양옥룡사지일원 → 광양 옥룡사지)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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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