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사진
국보33유적·탑신라 진흥왕 22년( 562)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昌寧 新羅 眞興王 拓境碑

경상남도 창녕군

기본 정보

지정 등급
국보33
분류
유적·탑
제작시대
신라 진흥왕 22년( 562)
지정 연도
1962
소재지
창녕군, 경상남도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8-1번지
좌표
35.540725, 128.502645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신라 진흥왕이 빛벌가야(지금의 창녕)를 병합한 뒤 이곳을 순시하며 세운 비예요. 약 1,460년 전인 562년에 만들어졌답니다. 당시 창녕은 신라가 서쪽으로 뻗어나가는 데 있어 마치 부채의 중심처럼 매우 중요한 길목이었어요. 비는 자연석을 다듬어 만들었는데, 글씨가 많이 닳아 읽기 어렵지만 뒷부분에는 진흥왕을 따라다닌 신하들의 이름과 직위가 또렷이 남아 있어요. 이를 통해 당시의 지방 행정 조직과 신분제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설명

빛벌가야(지금의 창녕군)를 신라 영토로 편입한 진흥왕이 이곳을 순시하면서 민심을 살핀 후 그 기념으로 세운 비이다. 당시 창녕군은 신라가 서쪽으로 진출하는데 있어 마치 부채살의 꼭지와 같은 중요한 길목이었는데, 진흥왕 16년(555) 신라에 병합되었고, 565년에는 대야주(지금의 합천군)와 합쳐져 비사벌군(比斯伐郡) 또는 비자화군(比自化郡)으로 불리워지게 되었다. 비는 목마산성 기슭에 있던 것을 1924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비각안에 모셔 둔 것으로, 자연석의 앞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비문을 새기고, 그 둘레에 선으로 윤곽을 돌려놓은 모습이다. 다른 순수비와 달리 ‘순수관경(巡狩管境)’이라는 제목이 보이지 않아 척경비(영토 편입을 기념하여 세운 비)라 일컫고 있으나, 임금을 수행한 신하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순수비에 속한다 할 수 있다. 비문은 심하게 닳아 있어 판독하기가 힘든 상태이나, 후반부는 명확히 읽어낼 수 있을 만큼 선명하다. 다른 순수비의 내용을 참고할 때 대략 진흥왕이 빛벌가야를 점령하여 영토를 확장한 사실과 왕의 통치이념, 포부 등이 실려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후반부에 당시 왕을 수행하던 신하들의 명단이 직관, 직위, 소속의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어 당시 지방행정조직, 신분제 및 사회조직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비를 세운 시기는 대가야가 멸망하기 1년 전인 신라 진흥왕 22년(561)으로, 이 지역을 가야진출의 발판으로 삼고자 한 왕의 정치적인 의도가 엿보인다. 또한 진흥왕 당시의 사실을 기록해 놓아『삼국사기』의 내용을 보완해줌으로써, 이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이해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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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khs.go.kr) · AI 해설: claude-haiku-4-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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