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금산사 혜덕왕사탑비 사진
보물24서적·기록물고려시대(1111)

김제 금산사 혜덕왕사탑비

金堤 金山寺 慧德王師塔碑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기본 정보

지정 등급
보물24
분류
서적·기록물
제작시대
고려시대(1111)
지정 연도
1963
소재지
김제시, 전북특별자치도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산 4-6
좌표
35.72434, 127.056322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고려 중기 승려 혜덕왕사를 기리기 위해 금산사 안에 세운 탑비예요. 혜덕은 11세에 불교 교리를 배우기 시작해 이듬해 승려가 되었고, 1079년 금산사 주지가 되어 숙종의 법주로서 왕에게 불교 강의를 하기도 했답니다. 59세에 입적하자 왕은 그를 국사로 대우해 '혜덕'이라는 시호와 '진응'이라는 탑이름을 내렸어요. 머릿돌은 사라지고 비문도 심하게 닳았지만, 거북 받침돌 조각과 덩굴무늬 장식은 남아 있답니다. 활달한 필체가 돋보이며, 혜덕이 입적한 지 15년 뒤인 예종 6년(1111)에 세워졌어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김제시의 다른 국가유산

설명

금산사 안에 서있는 탑비로, 혜덕왕사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혜덕은 고려 중기의 승려로서, 정종 4년(1038)에 태어나 11세에 불교의 교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그 이듬해에 승려가 되었다. 1079년 금산사의 주지가 되었으며 숙종이 불법(佛法)에 귀의하여 그를 법주(法主)로 삼자 왕에게 불교의 교리에 대한 강의를 하기도 하였다. 59세에 입적하였으며, 왕은 그를 국사로 대우하여 시호를 ‘혜덕’, 탑이름을 ‘진응’이라 내리었다. 현재 비의 머릿돌은 없어졌으며, 비문은 심하게 닳아 읽기가 매우 힘든 상태이다. 비의 받침돌에는 머리가 작고 몸통이 크게 표현된 거북을 조각하였고, 비문이 새겨진 몸돌은 받침돌에 비해 커보이는 듯하며, 주위에 덩굴무늬를 새겨 장식하였다. 비문에는 혜덕의 생애·행적, 그리고 덕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글씨는 구양순법(歐陽詢法)의 해서체로 썼는데, 구양순의 글씨보다 더욱 활달하여 명쾌한 맛이 있다. 신라나 조선에 비하여 고려시대의 글씨가 훨씬 뛰어남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비문에 의하면 비를 세운 것은 예종 6년(1111)으로 혜덕이 입적한 지 15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위치

지도를 불러오는 중…

지도에서 이 위치 보기 →

이곳을 방문하셨나요?

로그인 후 현장에서 GPS로 방문 인증하면 내 여정에 스탬프로 기록됩니다. (QR 인증은 추후 도입)

내 여정 보기 →

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오류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