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황남동 효자 손시양 정려비
慶州 皇南洞 孝子 孫時揚 旌閭碑
경상북도 경주시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보물 제68호
- 분류
- 서적·기록물
- 제작시대
- 고려시대
- 지정 연도
- 1963년
- 소재지
- 경주시, 경상북도— 경북 경주시 황남동 240-3번지
- 좌표
- 35.836269, 129.210984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고려시대 효자 손시양의 효행을 표창하려 세운 정려비예요. 손시양은 부모가 돌아가신 뒤 각각 3년씩 묘소 옆에 막을 짓고 곁을 지켰다고 전해진답니다. 동경유수 채정이 그의 효행을 왕에게 알려 마을에 정문을 세우게 되었어요. 비몸만 남고 받침돌과 머릿돌은 없는데, 명종 12년(1182)에 세워졌고 비문은 채정이 지었답니다. 일반적인 고려시대 비 형식과 달리 사각기둥 모양이며, 불교와 관련 없는 비문으로는 희귀한 자료예요. 길가에 있던 것을 1977년 보호각을 세워 보존하고 있답니다.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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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정려비란 충신이나 효자, 열녀 등을 기리고자 그들이 살았던 고을에 세운 비를 말한다. 이 비는 고려시대 사람인 손시양의 효행을 표창하는 정문(旌門)을 설치하게 된 내력을 적고 있다. 손시양은 부모가 돌아가신 뒤 각각 3년간 묘소 옆에 막을 지어놓고 곁을 지켰다 한다. 당시 동경유수(東京留守) 채정이 왕에게 그의 효행을 글로 적어 올려 마을에 정문을 세우게 되었다. 비는 비몸만 있을 뿐 아래의 받침돌과 위의 머릿돌은 없다. 고려시대 명종 12년(1182)에 세워진 것으로, 비문은 채정이 지었다. 이 정려비는 고려시대에 건립된 일반적인 비의 형식과 달리 사각기둥 모양으로, 고려시대에 불교와 관련되지 않은 비문으로서 희귀한 자료이다. 길가에 서있던 것을 1977년 받침을 설치하고 보호각을 건립하여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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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