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 사진
보물2162조각1609년(광해군 1) 조성, 1775년(영조 51) 개금보수

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

慶州 芬皇寺 金銅藥師如來立像

경상북도 경주시

기본 정보

지정 등급
보물2162
분류
조각
제작시대
1609년(광해군 1) 조성, 1775년(영조 51) 개금보수
지정 연도
2022
소재지
경주시, 경상북도경상북도 경주시 분황로 94-11 (구황동, 분황사)
좌표
35.840417, 129.233405Kakao 주소 변환

설명

‘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은 조선 후기의 유일하고 규모가 가장 큰 금동불 입상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1998년 분황사 보광전 해체 수리과정 중 중도리 바닥에서 1616년「분황사상량기(芬皇寺上樑記)」및 종도리에서 1680년「부동명활성하분황사중창문(府東明活城下分皇寺重創文)」묵서(墨書)가 확인되어 이 약사여래입상이 1609년 5,360근의 동을 모아 제작한 대형 불상임이 확인되었다. 또한 조성 이후에도 김수홍(金壽弘, 1626∼1690)의『퇴우당집(退憂堂集)』, 임필대(任必大, 1709∼1773)의 『유동도록(遊東都錄)』등 조선 후기 문인들의 문집에 언급되어 있어 전승 경위 또한 명확하다. 분황사는 신라시대부터 자장율사(慈藏律師), 원효대사(元曉大師) 등 여러 고승들의 수행처이자 중요한 가람터로 인정되어 온 한국의 대표적 사찰이다. 원래 이곳에 봉안되었던 금동약사불은 정유재란으로 인해 소실되었으나, 신라시대부터 이어져온 약사도량으로서 분황사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전란 후 얼마 되지 않아 지금처럼 장대한 규모로 복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이 주목되는 이유는 17세기 초반의 동조(銅造) 불상이라는 점, 규모가 354cm이르는 현존 최대 금동약사불이라는 점, 앞 시기 규범에 따라 입상으로 조성된 정통성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대형 불상이 대부분 소조(塑造, 진흙)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이러한 대규모 금동불상은 매우 희귀한 사례에 속한다. 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은 규모가 커 우람한 형태미를 보이고 있지만, 이와 달리 둥글고 통통한 얼굴에 어깨가 왜소해 전반적으로 동안(童顔)의 형태미를 보여준다. 특히 아이처럼 앳돼 보이는 이목구비는 16세기 불상 양식이, 가슴과 복부가 길쭉한 비례감과 세부 주름 등 신체 표현은 17세기 양식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신ㆍ구 양식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616년과 1680년에 작성된 두 건의 상량문을 통해 1609년에 동(銅)으로 불상을 조성했다는 조성 경위와 불상의 존명까지 분명히 밝히고 있어 이 시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위치

지도를 불러오는 중…

이곳을 방문하셨나요?

방문 체크하면 내 여정에 기록됩니다. (GPS·QR 인증은 추후 도입)

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문화재청 오픈API (ch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