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녕 인양사 조성비
昌寧 仁陽寺 造成碑
경상남도 창녕군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보물 제227호
- 분류
- 서적·기록물
- 제작시대
- 통일신라시대
- 지정 연도
- 1963년
- 소재지
- 창녕군, 경상남도—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리 294번지
- 좌표
- 35.543832, 128.494103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인양사와 관련된 여러 절의 범종·탑·금당 조성 연대와 쓰인 식량까지 낱낱이 기록한 통일신라 비석이에요. 혜공왕 7년(771) 인양사 종을 만든 일부터 헌덕왕 2년(810) 이 비를 세우기까지 40년간의 일이 담겨 있답니다. 직사각형 바닥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커다란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에요. 비 뒷면엔 애띤 얼굴에 자비로운 모습의 승려상이 새겨져 있어 사찰 조성에 참여한 승려를 기린 것으로 추정된답니다. 해서체를 벗어난 다양한 글씨체가 새로운 서체의 전개를 보여주는, 통일신라 전성기 불사 기록으로서 특수한 가치를 지닌 비석이에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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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인양사를 비롯하여 이와 관련이 있는 여러 절의 범종, 탑, 금당 등의 조성연대와 쓰인 식량 등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는 비로, 통일신라 혜공왕 7년(771) 인양사 종을 만든 일로부터 이 비석을 세운 신라 헌덕왕 2년(810)까지 40년간 이루어진 일의 내용이 담겨 있다. 비는 직사각형의 바닥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커다란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비 뒷면에는 스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사찰 조성에 관련된 당시의 승려를 기리기 위해 새겨놓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스님은 애띤 얼굴에 자비로운 모습이며, 사람의 몸을 모방한 부드러운 선이 8∼9세기 조각수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문에 새겨진 글씨의 형태는 당시에 유행했던 해서체의 범주를 벗어나 여러 가지 형태를 보여주고 있어 새로운 서체의 전개를 살필 수 있다. 당시 일반적인 비의 형태를 벗어나고, 지나치게 큰 지붕돌이 원래의 것인지는 의심스럽지만 통일신라 전성기의 불찰조성을 기록한 비석으로서 특수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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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