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
傳 楊平 菩提寺址 大鏡大師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보물 제351호
- 분류
- 유적·탑
- 제작시대
- 고려시대
- 지정 연도
- 1963년
- 소재지
- 서대문구, 서울특별시—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산11-1번지 이화여자대학교
- 좌표
- 37.562919, 126.948715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통일신라말~고려초 승려 대경대사(862~930)의 8각 사리탑이에요. 9세에 출가해 성주사 무염대사에게 참선을 배우고, 중국에서 수행한 뒤 귀국해 고려 태조의 부름으로 보리사 주지가 됐답니다. 68세로 입적하자 태조가 '대경대사' 시호와 '현기' 탑이름을 내렸어요. 1913년 양평 보리사터에서 서울로 옮겨졌답니다. 기단엔 사자·구름·연꽃과 상상 속 새를, 탑신엔 사천왕상과 보살상을 조각했어요. 같은 터의 탑비가 고려 태조 22년(939) 세워진 점으로, 이 탑도 비슷한 시기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답니다.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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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통일신라말 ·고려초에 활약한 승려인 대경대사의 사리탑이다. 대경대사(862∼930)는 통일신라 경문왕 2년(862)에 태어나 9세 때 출가하였으며, 19세에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을 받았다. 그후 교리보다는 참선에 뜻을 두어 성주사의 무염대사에게서 수행하기도 하였다. 중국으로 건너가 수 년동안 정진하다가 효공왕 13년(909)에 귀국 후 소백산에서 은거하던 중 고려 태조의 부름으로 보리사의 주지가 되었다. 태조 68세로 입적하니, 태조는 그의 시호를 ‘대경대사’라 하고 탑이름을 ‘현기’라고 내렸다. 비는 1913년 경기도 양평군 보리사터에서 서울로 옮겨왔는데, 이때 바닥돌이 떨어져 나가 현재는 새로 만든 바닥돌 위에 놓여 있으며, 기단부(基壇部)위에 탑의 몸돌을 올리고 지붕돌을 덮어 놓은 전형적인 8각 사리탑이다. 기단의 아래받침돌은 여러 단이 8각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자상과 구름, 연꽃조각 등을 돌아가며 조각하였다. 가운데받침돌은 구름조각으로 나뉜 각 면에 사람의 머리에 새 몸을 한 상상속의 새를 1구씩 도드라지게 새겼다. 윗받침돌은 아래에 비해 넓고, 위로 3단의 받침을 두었다. 탑신의 몸돌은 앞뒤 2면에 문짝모양을 새겼으며, 그 양옆으로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나머지 2면에는 보살상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 비천상과 꽃장식을 번갈아 도드라지게 조각했고 각 경사면은 움푹하다. 탑의 머리장식부분에는 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만이 남아 있다. 전반적으로 각 부 구조가 가지런하여 품위가 있으며, 조형과 균형미가 뛰어나다. 같은 터에서 발견된 대경대사의 사리탑비가 고려 태조 22년(939)에 세워졌으므로, 이 탑 역시 그 즈음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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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