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비 사진
보물361서적·기록물고려시대

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비

楊平 菩提寺址 大鏡大師塔碑

서울특별시 용산구

기본 정보

지정 등급
보물361
분류
서적·기록물
제작시대
고려시대
지정 연도
1963
소재지
용산구, 서울특별시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6가)
좌표
37.523522, 126.981052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통일신라말~고려초 승려 대경대사의 탑비로, 양평 보리사터에서 발견돼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어요. 9세에 출가해 교종을 배우다 선을 연구하고, 당나라 유학 후 경순왕의 스승이 됐답니다. 고려 태조의 존중을 받아 보리사 주지로 머물다 69세로 입적하니, 태조가 '대경' 시호와 '현기' 탑이름을 내렸어요. 거북받침과 거대한 머리돌이 균형은 다소 부족하지만, 용무늬 조각은 매우 힘차답니다. 최언위가 글을 짓고 이환추가 쓴, 고려 태조 22년(939) 세워진 비석이에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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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활약한 승려인 대경대사의 탑비로, 보리사터에서 발견되어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대경대사는 9세에 출가하여 교종을 배웠으나, 나중에는 선(禪)을 연구하였다.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경순왕의 스승이 되었으며, 고려 태조는 그를 존중하여 보리사의 주지로 머물게 하였다. 69세에 이 절에서 입적하니 태조는 시호를 ‘대경’, 탑 이름을 ‘현기’라고 내렸다. 비는 여의주를 물고 일어선 납작한 돌거북 받침과, 거대한 비머리돌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해 균형을 잃고 있다. 그러나 머릿돌에 새겨진 구름과 용의 무늬가 매우 힘차게 조각되어 눈여겨볼 만하다. 비문에는 대사의 생애·공적 등이 새겨져 있는데, 당시의 문장가였던 최언위가 글을 짓고, 이환추가 글씨를 썼으며, 대사의 제자인 최문윤이 글씨를 새겼다. 글씨에는 획의 모서리를 날카롭게 살린데서 오는 강인함이 묻어나는데, 고려 전기의 특징이 잘 담겨져 있는 부분이다. 비를 세운 시기는 고려 태조 22년(939)으로, 대사가 입적한 지 10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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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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