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잉군 초상 사진
보물1491회화18세기초

연잉군 초상

延礽君 肖像

서울특별시 종로구

기본 정보

지정 등급
보물1491
분류
회화
제작시대
18세기초
지정 연도
2006
소재지
종로구, 서울특별시서울 종로구 효자로 12, 국립고궁박물관 (세종로,국립고궁박물관)
좌표
37.576571, 126.974851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훗날 영조가 되는, 18세기 초 연잉군 초상이에요. '초봉연잉군고호양성헌'이라 적혀 왕이 되기 전 도사본임을 알려준답니다. 사모에 백택흉배 녹포단령을 입고 공수 자세로 앉은 전신교의좌상이에요. 1714년 진재해가 그린 것으로, 경희궁 태녕전에 봉안됐다가 정조 2년(1778) 선원전으로 이봉됐답니다. 가장자리 1/3이 불에 타 결손됐지만 얼굴·흉배·족좌는 온전해요. 어진 연구와 18세기 초 정장관복형식 초상화의 기준작으로 귀중한 자료랍니다.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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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연잉군 초상>은 화면의 좌측 상단에 “初封延仍君古號養性軒”이라 적혀있어 이 본이 영조가 임금이 되기 이전에 제작된 延礽君 시절 圖寫本임을 알 수 있다. 紗帽, 白澤 胸背를 부착한 綠袍團領, 犀帶, 검은색 녹피화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정장관복차림에 공수자세로 앉아 있는 좌안8분면의 전신교의좌상이다. 이 상은 영조 21세(1714년) 때 진재해(?-1735 이전)가 그린 것으로 영조 21년(1745)에 慶熙宮 泰寧殿에 봉안되었다가 정조가 즉위하자 잠시 景賢堂에 두었다가 정조 2년(1778년) 3월에 선원전으로 이봉되었다. 이 본은 가장자리가 불에 타서 1/3이 결손되었으나 얼굴, 흉배, 관대, 족좌 부분이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어 당시의 초상화의 기법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현전하는 조선시대 어진은 전주 慶基殿의 태조어진, 고궁박물관 소장의 철종어진과 익종어진 등 극소수만이 남아 있는 실정이라 이 상은 영조가 연잉군 시절의 초상이라 할지라도 어진 연구에 참고 자료가 된다. 특히 1713년(숙종 39년) 肅宗御眞圖寫에 主管화사였으며, 이후 조영석의 형 <趙榮福像> 등 사대부들의 초상화 제작에도 참여한 진재해의 초상화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이 상은 보물로 지정된 <강현 초상>과 함께 18세기 초기 정장관복형식의 초상화의 형식을 대표하는 기준작으로 평가된다. ㅇ 규격(세로x가로) : 18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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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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