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여 부소산성
扶餘 扶蘇山城
충청남도 부여군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사적 제5호
- 분류
- 유적·탑
- 제작시대
- 삼국시대
- 지정 연도
- 1963년
- 소재지
- 부여군, 충청남도— 충남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31 (쌍북리)
- 좌표
- 36.290858, 126.912621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백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산성으로, 백제 사비시대의 도성이에요. 『삼국사기』엔 사비성·소부리성으로 기록됐지만, 산 이름을 따 부소산성이라 부른답니다. 백제 성왕 16년(538) 사비로 천도하며 왕궁을 지키기 위해 쌓은 것으로 보여요. 산봉우리를 두른 테뫼식과 주위를 감싼 포곡식이 합쳐진 복합식 산성이랍니다. 동·서·남문터가 남아 있고, 성 안엔 군창터와 영일루·사비루·고란사·낙화암 등이 자리해요. 유사시엔 군사용으로, 평시엔 왕과 귀족이 경관을 즐기던 곳으로 쓰였을, 백제 멸망까지 수도를 지킨 산성이랍니다.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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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백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산성으로 사비시대의 도성(都城)이다.『삼국사기』「백제본기」에는 사비성·소부리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 부른다.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수도를 옮기던 시기인 백제 성왕 16년(538)에 왕궁을 수호하기 위하여 이중(二重)의 성벽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성왕 22년(500)경에 이미 산 정상을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 있던 것을 무왕 6년(605)경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한 것으로 짐작되어 백제 성곽 발달사를 보여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성곽의 형식은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빙 둘러싼 테뫼식과 다시 그 주위를 감싸게 쌓은 포곡식이 혼합된 복합식 산성이다. 동·서·남문터가 남아 있으며, 북문터에는 금강으로 향하는 낮은 곳에 물을 빼는 수구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성 안에는 군창터 및 백제 때 건물터와 영일루·사비루·고란사·낙화암 등이 남아있다. 성 안에 군창터와 건물터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사시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고, 평상시에는 백마강과 부소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이용하여 왕과 귀족들이 즐기던 곳으로 쓰인 듯하다. 이 산성은 사비시대의 중심 산성으로서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수도를 방어한 곳으로 역사적 의의가 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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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