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공산성 사진

공주 공산성

公州 公山城

충청남도 공주시

기본 정보

지정 등급
사적12
분류
유적·탑
제작시대
삼국시대
지정 연도
1963
소재지
공주시, 충청남도충남 공주시 산성동 2번지
좌표
36.463881, 127.126520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공산성은 백제가 공주를 수도로 삼았을 때 도시를 지키던 산성이에요. 금강 근처 야산 계곡을 둘러싼 모습으로, 원래는 흙으로 쌓았다가 조선시대에 돌로 다시 지었답니다.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400m 정도의 큰 규모예요. 네 곳에 문이 있었는데, 남문 진남루와 북문 공북루가 지금도 남아있고, 동문과 서문은 1993년에 복원했어요. 백제 기와와 토기 같은 귀한 유물들이 많이 발견되었으며, 백제 멸망 후 부흥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역사 깊은 곳입니다.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설명

공산성은 백제의 수도가 공주였을 때 공주를 지키던 백제의 산성이다. 금강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산성으로,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고쳤다. 쌓은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며,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공산성으로,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렀다. 동서로 약800m, 남북으로 400m 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4방에 문터가 확인되는데,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가 남아있고 동문과 서문은 터만 남아있었는데, 1993년에 동문터에는 영동루 서문터에는 금서루를 복원하였다. 암문·치성·고대·장대·수구문 등의 방어시설이 남아 있으며, 성 안에는 쌍수정·영은사·연지·임류각지, 그리고 만하루지 등이 있다. 또한 연꽃무늬 와당을 비롯하여 백제 기와·토기 등의 유물들과 고려·조선시대의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백제 멸망 직후에 의자왕이 잠시 머물기도 하였으며,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지이기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김헌창의 난(822)이 일어나기도 하였으며, 조선시대 이괄의 난(1623)으로 인조가 피난했던 곳이기도 하다. 백제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의 백제 도성이었으며, 이후 조선시대까지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큰 중요한 유적이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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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khs.go.kr) · AI 해설: claude-haiku-4-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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