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월성 사진
사적16유적·탑신라 파사왕 22년( 101)🌍 유네스코 세계유산 · 경주역사유적지구(2000년 등재)

경주 월성

慶州 月城

경상북도 경주시

기본 정보

지정 등급
사적16
분류
유적·탑
제작시대
신라 파사왕 22년( 101)
지정 연도
1963
소재지
경주시, 경상북도경북 경주시 인왕동 387-1번지
좌표
35.831801, 129.223004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경주 월성은 신라의 궁궐이 있던 도시예요. 반달 모양이라 해서 반월성이라고도 부르죠. 『삼국사기』에 따르면 파사왕 22년(101년)에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다고 해요. 신라 역대 왕들의 궁성이었던 이곳은 동·서·북쪽으로 흙과 돌로 튼튼하게 쌓았고, 남쪽은 절벽을 그대로 방어벽으로 활용했어요. 성벽 아래로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물길도 흘렀답니다. 문무왕 때에는 안압지, 임해전, 첨성대 일대가 포함되면서 성의 규모가 한층 커졌어요. 지금도 성 안에는 옛 건물터들이 남아있고, 1741년에 옮겨온 석빙고도 볼 수 있답니다.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설명

월성은 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이다.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하여 반월성·신월성이라고도 하며, 왕이 계신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파사왕 22년(101)에 성을 쌓고 금성에서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다고 전한다. 이 성은 신라 역대 왕들의 궁성이었으며, 문무왕 때에는 안압지·임해전·첨성대 일대가 편입되어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성을 쌓기 전에는 호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탈해왕이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탈해왕을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성의 동·서·북쪽은 흙과 돌로 쌓았으며, 남쪽은 절벽인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성벽 밑으로는 물이 흐르도록 인공적으로 마련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경주 동궁과 월지로 통했던 문터가 남아있다. 성 안에 많은 건물터가 남아있으며, 1741년에 월성 서쪽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석빙고가 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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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khs.go.kr) · AI 해설: claude-haiku-4-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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