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감은사지 사진
사적31유적지통일신라 신문왕

경주 감은사지

慶州 感恩寺址

경상북도 경주시

기본 정보

지정 등급
사적31
분류
유적지
제작시대
통일신라 신문왕
지정 연도
1963
소재지
경주시, 경상북도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용당리 55-1
좌표
35.748204, 129.476791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동해안에 자리한 통일신라 사찰터, 경주 감은사지예요. 문무왕이 왜구 침입을 막고자 세우기 시작했지만, 완성 전 세상을 떠나 아들 신문왕이 682년 완성했답니다. 문무왕은 죽어 바다의 용이 되겠다는 유언을 남겨 동해 대왕암에 장사됐고,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감은사라 이름 붙였다고 전해요. 금당 앞 동·서 3층석탑 2기는 우리나라 석탑 중 가장 큰 규모랍니다. 황룡사, 사천왕사와 함께 신라 호국사찰로 알려진, 정말 귀중한 유적이에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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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감은사는 동해안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지금은 3층석탑 2기와 금당 및 강당 등 건물터만 남아있다. 신라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한 후 부처의 힘을 빌어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웠다. 절이 다 지어지기 전에 왕이 죽자, 그 뜻을 이어받아 아들인 신문왕이 682년에 완성하였다.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지낼 것”을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한 곳이 절 부근의 대왕암이며,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절 이름을 감은사(感恩寺)라 하였다고 전한다. 발굴조사를 통하여 강당·금당·중문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금당 앞에는 동·서쪽에 두 탑을 대칭적으로 세웠음을 밝혔다. 이 건물들은 모두 회랑으로 둘러져 있는데, 이러한 배치는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금당의 지하에는 배수시설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죽은 문무왕이 바다용이 되어 이 시설을 통해 왕래하였다고 전해진다. 금당 앞의 탑 2기는 우리나라의 석탑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석탑의 모범이 되고 있다. 감은사는 황룡사, 사천왕사와 함께 나라를 보호하는 호국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언제 절이 무너졌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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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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