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명활성 사진

경주 명활성

慶州 明活城

경상북도 경주시

기본 정보

지정 등급
사적47
분류
유적·탑
제작시대
신라시대
지정 연도
1963
소재지
경주시, 경상북도경북 경주시 보문동
좌표
35.840347, 129.262627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경주 동쪽 명활산 꼭대기에 자연석으로 쌓은 신라 산성이에요. 둘레가 약 6㎞나 될 정도로 정말 큰 규모랍니다. 405년에 왜병이 공격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그 이전에 만들어진 성임을 알 수 있어요. 진흥왕 때 다시 지었고, 진평왕 때는 확장되기도 했어요. 신라의 수도 금성을 지키는 중요한 방어 시설이었죠. 지금은 대부분 무너졌지만, 여러 곳에서 옛 성벽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설명

경주의 동쪽 명활산 꼭대기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은 둘레 약 6㎞의 신라 산성이다. 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 신라 실성왕 4년(405)에 왜병이 명활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보이므로 그 이전에 만들어진 성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성을 쌓는 방법에서도 다듬지 않은 돌을 사용한 신라 초의 방식을 보이고 있다. 눌지왕 15년(431)에는 왜구가 이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였는데, 이는 이 성이 신라의 수도인 금성을 지키는데 중요한 곳임을 말해준다. 진흥왕 15년(554)에 다시 쌓았고, 진평왕 15년(593)에는 성을 확장했다. 지금은 대부분의 성벽이 무너져 겨우 몇 군데에서만 옛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진흥왕 때의 ‘명활산성작성비’가 발견되어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고 있으며, ‘명활산성비’로 보이는 비석조각이 안압지에서 발견되었다. 선덕여왕 때는 비담(毗曇)이 이 곳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김유신이 평정하기도 했으며, 남산성·선도산성·북형산성과 함께 동해로 쳐들어오는 외적(外敵)에 대항하여 경주를 지키는데 큰 몫을 한 곳이다. <br/><b>※(명활산성 → 경주 명활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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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khs.go.kr) · AI 해설: claude-haiku-4-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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