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오금산성 사진
사적92유적·탑삼국시대

익산 오금산성

益山 五金山城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기본 정보

지정 등급
사적92
분류
유적·탑
제작시대
삼국시대
지정 연도
1963
소재지
익산시, 전북특별자치도전북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산50-3번지
좌표
35.992313, 127.037413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흙과 돌로 쌓은, 익산 오금산성이에요. 보덕성이라고도 불리는데, 보덕국 왕 안승이 이곳을 소재지로 삼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답니다. 발굴로 남문터, 수구자리, 건물터가 확인됐어요. 6세기 후반∼7세기 전반 축조로 추정되며, 백제·통일신라·고려시대의 유물이 함께 발견됐답니다. 백제가 성장하던 시기 만들어져 오랫동안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부근에서 청동 유물까지 나와, 익산 지역사 연구에 정말 중요한 산성이에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익산시의 다른 국가유산

설명

오금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작은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산성으로 흙과 돌을 사용하여 쌓았으며, 오금산성(五金山城) 또는 보덕성(報德城)이라고도 한다. 성을 쌓은 시기는 이곳에서 발견되는 유물들을 볼 때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는 남문이 있던 자리와 성문 밑으로 개울물이 흐르도록 했던 수구자리, 그리고 건물이 있었던 자리가 남아있다. 전해지는 자료에 의하면, 보덕성이라는 이름은 보덕국(報德國)의 왕 안승(安勝)이 670년 익산에 자리잡은 뒤 684년까지 세운 보덕국의 소재지였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하는데 확실한 근거는 없다. 1980년대에 2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발견된 유물들은 대부분이 흙으로 만든 그릇 조각과 기와 조각으로서 백제와 통일신라, 고려시대의 것들로 구분되나, 백제 말의 기와류와 토기류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발견된 유물들을 볼 때 이 성은 백제가 크게 성장하던 시기에 만들어져 오랫동안 사용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성의 부근에서 청동으로 만든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어 성의 중요성을 더해주고 있다.

위치

지도를 불러오는 중…

지도에서 이 위치 보기 →

이곳을 방문하셨나요?

로그인 후 현장에서 GPS로 방문 인증하면 내 여정에 스탬프로 기록됩니다. (QR 인증은 추후 도입)

내 여정 보기 →

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오류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