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읍성 사진
사적145유적·탑조선시대 초기

고창읍성

高敞邑城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기본 정보

지정 등급
사적145
분류
유적·탑
제작시대
조선시대 초기
지정 연도
1965
소재지
고창군, 전북특별자치도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126번지
좌표
35.430776, 126.704622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백제 때 모량부리로 불렸던 데서 유래한, 모양성이라고도 하는 고창읍성이에요. 나주진관,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내륙 방어의 요충지였답니다.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 최근 원형에 가깝게 복원됐어요. 둘레 1,684m로, 옹성 3곳과 장대지 6곳을 갖춘 전략시설이랍니다. 문짝 홈이 있는 누문은 고구려 성문 양식과 비교되는 귀한 사례예요. 여성들이 성벽을 밟으며 액운을 쫓던 답성 풍습으로도 유명한, 정말 소중한 문화유산이에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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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옛 고창 고을의 읍성으로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데, 백제 때 고창지역을 모량부리로 불렀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나주진관, 입암산성 등과 더불어 호남내륙을 방어하는 요충지로, 단종 원년(1453)에 세워진 것이라고도 하고 숙종 때 완성되었다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최근 보수공사를 하여 원형에 가깝도록 복구하였다. 성 둘레는 1,684m이며, 동·서·북문과 옹성이 3개소, 장대지 6개소와 해자들로 된 전략적 요충시설이 갖춰져 있다. 성 안에는 동헌·객사를 비롯하여 22동의 관아건물들로 되어 있었으나 대부분 손실되었다. 이 성은 조선시대의 읍성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주초와 문짝을 달던 홈이 파인 누문(樓門)을 가지고 있어, 평양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성문, 보은의 삼년산성이나 강화읍성 등에서 볼 수 있는 양식과 비교되어 성곽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여성들의 성벽 밟기 풍습으로 유명한데, 한 해의 재앙과 질병을 쫓고 복을 비는 의식의 하나로 좋은 민속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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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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