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이견대 사진
사적159유적지통일신라 신문왕

경주 이견대

慶州 利見臺

경상북도 경주시

기본 정보

지정 등급
사적159
분류
유적지
제작시대
통일신라 신문왕
지정 연도
1967
소재지
경주시, 경상북도경북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661번지
좌표
35.744279, 129.483840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문무왕의 수중릉 대왕암이 가장 잘 보이는, 경주 이견대예요.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신문왕이 681년 세웠답니다. 감은사 법당 밑에 배수로를 만들어 용이 된 아버지가 드나들 수 있게 했어요. 용이 나타난 곳이 이견대라 불렸답니다. 신문왕이 이곳에서 옥대와 만파식적 피리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요. 이름은 주역의 문구에서 따온 것으로, 발굴로 건물터가 확인돼 새롭게 복원된 유적이에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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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제30대 문무왕의 수중릉인 대왕암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 건물이다.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호국정신을 받들어 31대 왕인 신문왕이 681년에 세웠다. 신문왕은 해변에 감은사라는 절을 짓고, 용이 된 아버지가 절에 들어와서 돌아다닐 수 있도록 법당 밑에 동해를 향하여 구멍을 하나 뚫어 두었다. 그 뒤에 용이 나타난 곳을 이견대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 이견대에서 신문왕이 용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고 평화롭게 할 수 있는 옥대와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하나 받았다고도 한다. 이견대라는 이름은 신문왕이 바다에 나타난 용을 보고 나라에 크게 이익이 있었다는 뜻을 포함한 말인데, 『주역』의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大人)’이란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발굴조사 때 건물이 있던 자리가 발견됨으로써 신라의 건축양식을 추정하여 오늘날 새롭게 다시 지었다. <br/><b>※(이견대 → 경주 이견대)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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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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