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탈해왕릉
慶州 脫解王陵
경상북도 경주시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사적 제174호
- 분류
- 유적지
- 제작시대
- 신라 탈해왕(서기 80년경)
- 지정 연도
- 1969년
- 소재지
- 경주시, 경상북도— 경북 경주시 동천동 산17번지
- 좌표
- 35.852199, 129.232368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알에서 태어나 바다를 건너왔다는 신라 탈해왕의 무덤, 경주 탈해왕릉이에요. 다파나국 왕비가 낳은 알이 궤짝에 담겨 바다를 떠돌다, 진한 아진포에서 노파에게 거두어져 자랐다고 전해진답니다. 까치가 궤짝을 따라다녔다 해서 성을 석씨로 삼았어요. 탈해왕은 신라 최초의 석씨 왕이 됐답니다. 높이 4.5m, 지름 14.3m의 원형 봉토무덤으로, 내부는 굴식돌방무덤으로 추정돼요. 신비로운 탄생 설화를 간직한 왕릉이에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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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신라 탈해왕(재위 57∼80)의 무덤으로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왜국 동북 1,000리 지점에 다파나국의 왕비가 알을 낳았는데 불길하다 하여 보물과 함께 궤짝에 넣어 바다에 띄워 보냈다. 처음에는 금관국(김해)에 닿았으나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아무도 거두지 않았고 다시 진한의 아진포에 닿았는데 노파가 거두어 키웠다. 궤짝이 떠오를 때 까치 한 마리가 따라다니며 울었다고 하여 까치 작(鵲)자에서 조(鳥)를 떼고 석(昔)으로 성을 삼고, 아이가 궤를 풀고 나왔다 해서 이름을 탈해(脫解)라 지었다. 탈해왕은 석(昔)씨의 시조로서 신라 최초 석씨 왕이 되었다. 높이 4.5m, 지름 14.3m의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이다. 주변에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았으며, 겉으로 보아 내부는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으로 추측된다. <br/><b>※(신라탈해왕릉 → 경주 탈해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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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