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충렬사 사진
사적233유적지조선시대

남해 충렬사

南海 忠烈祠

경상남도 남해군

기본 정보

지정 등급
사적233
분류
유적지
제작시대
조선시대
지정 연도
1973
소재지
남해군, 경상남도경상남도 남해군 노량로183번길 27(설천면, 남해충렬사)
좌표
34.941848, 127.876168

설명

남해충렬사는 임진왜란이 끝나던 해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으로 노량충렬사라고도 한다. 통영의 충렬사와 함께 ‘충열’이란 현판을 처음부터 같이 사용해 왔으며 인조 때 지어졌다. 충무공이 전사한 후 그의 시신이 한 때 이곳에 모셔졌는데 인조 10년(1632) 유림들이 옛 터에 작은 집을 짓고 제사를 지냈던 것이 최초의 사당이다. 충무공이 순국한지 60년이 되던 효종 9년(1658)에 좁고 초라한 옛집을 헐고 새집을 지었다. 그 후 현종 4년(1663)에 통영 충렬사와 함께 임금이 내려준 현판을 받게 되었다. 이런 사실들을 기록한 충무이공묘비가 사당 곁에 있으며, 비문은 현종 2년(1661)에 송시열이 썼고, 1663년에 박경지 등이 세운 것이다. 옛날에는 이 사당 곁에 호충암이란 암자가 있었는데, 화방사의 승려 10명과 승장 1명이 번갈아 와서 사당을 지켰다고 한다. 또한 공이 죽은 후 자운이란 승려가 공을 사모하여 쌀 수백섬을 싣고 와서 공을 위해서 제사를 지낸 것으로도 유명한데 자운은 원래 충무공의 밑에 있던 승병이었다. 충렬사는 충무공의 노량 앞바다를 지키고 있는 수호신의 사당이라 할 수 있다. 경내에는 비각·내삼문·외삼문·관리사 등이 있고 사당 뒤의 정원에는 충무공의 시신을 임시 묻었던 자리에 묘가 남아 있으며, 1948년 정인보가 쓴 충열사비가 있다.

위치

지도를 불러오는 중…

이곳을 방문하셨나요?

방문 체크하면 내 여정에 기록됩니다. (GPS·QR 인증은 추후 도입)

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문화재청 오픈API (ch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