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만인의총 사진
사적272유적지조선 선조 30년(1597)

남원 만인의총

南原 萬人義塚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기본 정보

지정 등급
사적272
분류
유적지
제작시대
조선 선조 30년(1597)
지정 연도
1981
소재지
남원시, 전북특별자치도전라북도 남원시 만인로 3 (향교동, 만인의총)
좌표
35.418093, 127.377307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정유재란 때 남원성을 지키다 전사한 이들을 함께 묻은, 남원 만인의총이에요. 선조 30년(1597) 왜군 11만 명이 남원을 공격했답니다. 남원은 전라도와 충청도를 잇는 요충지였어요. 군·관·민이 합심해 싸웠지만 결국 성이 함락됐답니다. 만여 명이 전사했고, 그 시신을 함께 합장했어요. 광해군 4년(1612) 충렬사를 세워 8충신을 제향했답니다. 1964년 지금 자리로 이전한, 정유재란 항쟁의 정말 숭고한 넋을 기리는 유적이에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남원시의 다른 국가유산

설명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때 남원성을 지키기 위하여 왜적과 싸우다가 전사한 사람들을 함께 묻은 무덤이다. 왜군은 임진왜란때 전라도지방을 차지하지 못해서 결국 패했다고 생각하여, 정유재란 때는 전라도 지역을 점령한 뒤 북상할 계획을 세웠다. 선조 30년(1597) 7월말 왜군 11만명이 황석산성과 남원을 공격하였다. 남원은 지역적으로 전라도와 충청도를 연결하는 요충지로 국가에서도 이곳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방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왜군의 침입에 대항하여 군·관·민이 합심하여 싸웠으나 남원성은 마침내 함락되고 말았다. 이 싸움에서 만 여명의 관리와 군사, 백성이 사망하였는데, 임진왜란이후 전사한 사람들의 시신을 한곳에 합장하였고 광해군 4년(1612) 충렬사를 세워 8충신을 제향 하였다. 처음 이 무덤은 남원역 부근에 있었으나 민가에 둘러싸이게 되어 1964년 현재 자리로 이전하였다. <br/><b>※(만인의총 → 남원 만인의총)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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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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