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읍성 사진
사적298유적·탑조선시대

남원읍성

南原邑城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기본 정보

지정 등급
사적298
분류
유적·탑
제작시대
조선시대
지정 연도
1982
소재지
남원시, 전북특별자치도전북 남원시 동충동 464-1번지
좌표
35.413767, 127.377096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신라 신문왕 때 소경 설치와 함께 691년 쌓은, 남원읍성이에요. 1597년 왜군 침입에 대비해 크게 다시 쌓았답니다. 그해 8월 조·명연합군이 왜군에게 크게 패했고, 이때 죽은 이들의 무덤이 만인의총이에요. 돌축대 길이 2.4㎞, 높이 4m에, 우물 70여 개가 있었답니다. 남북·동서 직선대로가 교차하는 바둑판 모양 도로 구성이 특징으로, 지금도 시내 도로에 그 흔적이 남은 정말 독특한 읍성이에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남원시의 다른 국가유산

설명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신라 신문왕(재위 681∼692) 때 지방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원지역에 소경(지방도시)을 설치하였고, 691년에 쌓은 네모난 형태의 평지 읍성이다. 1597년에는 왜군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성을 크게 다시 쌓고 수리하여 담을 높였다. 그해 8월 조·명연합군과 왜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져 왜군에게 크게 패했고, 이때 싸우다 죽은 군인과 주민들의 무덤이 만인의총이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때 많이 허물어져 약간의 성터 모습만 남아있다. 돌축대의 길이는 2.4km가 넘고, 높이 약 4m에 이르며 성 안에는 70여 개의 우물이 있었다. 성 내에는 남북과 동서로 직선대로가 교차하고, 그 사이에도 너비가 좁은 직선도로가 교차하여 바둑판 모양의 도로구성을 볼 수 있다. 근대에 들어와 도시가 들어서며 성곽은 대부분 헐려나갔으나, 시내 중심부의 도로는 지금도 바둑판 모양으로 되어 있어, 과거 성내의 가로 구성의 흔적을 보이고 있다. 조선시대 읍성의 가장 전형적인 구조를 하고 있으며, 규모가 크고 우리나라 성곽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네모 반듯한 구성과 성내의 가로가 직선으로 구성된 점이 흥미롭다. <br/><b>※(남원성 → 남원읍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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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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