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傳 原州 興法寺址 廉居和尙塔
서울특별시 용산구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국보 제104호
- 분류
- 유적·탑
- 제작시대
- 통일신라 문성왕 6년(844년)
- 지정 연도
- 1962년
- 소재지
- 용산구, 서울특별시—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6가)
- 좌표
- 37.523514, 126.980619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통일신라 말 승려 염거화상의 사리탑이에요. 염거화상은 도의선사의 제자로 설악산 억성사에 머물며 선을 널리 알리다 문성왕 6년(844)에 입적했답니다. 원래 흥법사터에 있었다고 전하지만 확실한 근거가 없어 이름 앞에 '전(傳)'자가 붙었고,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어요. 8각을 기본으로 한 기단은 밑돌엔 사자를, 가운데돌엔 향로를 새겼죠. 탑신 몸돌엔 문짝 모양과 사천왕상을, 지붕돌엔 목조건축을 본뜬 기왓골이 새겨졌어요. 탑을 옮길 때 발견된 금동탑지로 문성왕 6년(844) 건립을 확인했으며, 사리탑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랍니다.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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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통일신라 말의 승려 염거화상의 사리탑이다. 염거화상(?∼844)은 도의선사의 제자로, 선(禪)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었던 당시 주로 설악산 억성사에 머물며 선을 널리 알리는데 힘썼다. 체징에게 그 맥을 전하여 터전을 마련한 뒤 문성왕 6년(844)에 입적하였다. 이 탑은 원래 강원특별자치도 흥법사터에 서 있었다 하나, 이에 대한 확실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탑이름 앞에 ‘전(傳:∼라 전하다)’자를 붙이게 되었고, 원래 위치에서 서울로 옮겨진 후에도 탑골공원 등 여러 곳에 옮겨졌다가 경복궁에 세워졌으나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탑은 아래위 각 부분이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기단(基壇)은 밑돌·가운데돌·윗돌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면마다 소박한 조각이 멋스럽게 펼쳐져 있다. 밑돌에는 사자를 도드라지게 새겼고, 가운데돌에는 움푹 새긴 안상(眼象)안에 향로를 새겨 두었다. 2단으로 마련된 윗돌은 아래단에는 연꽃을 두 줄로 돌려 우아함을 살리고 윗단에는 둥그스름한 안상(眼象) 안에 여러 조각을 두어 장식하였다. 사리를 모셔둔 탑신(塔身)의 몸돌은 면마다 문짝모양, 4천왕상(四天王像)을 번갈아 가며 배치하였는데, 입체감을 잘 살려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지붕돌은 당시의 목조건축양식을 특히 잘 따르고 있어서 경사면에 깊게 패인 기왓골, 기와의 끝마다 새겨진 막새기와모양, 밑면의 서까래표현 등은 거의 실제 건물의 기와지붕을 보고 있는 듯하다. 꼭대기에 있는 머리장식은 탑을 옮기기 전까지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 탑을 옮겨 세울 때 그 안에서 금동탑지(金銅塔誌)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통일신라 문성왕 6년(844)에 이 탑을 세웠음을 알게 되었다. 사리탑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단아한 기품과 깨끗한 솜씨가 잘 어우러져 있다. 이후 대부분의 사리탑이 이 양식을 따르고 있어 그 최초의 의의를 지니는 작품이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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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