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경회루 사진
국보224건축물조선 고종 4년(1867)

경복궁 경회루

景福宮 慶會樓

서울특별시 종로구

기본 정보

지정 등급
국보224
분류
건축물
제작시대
조선 고종 4년(1867)
지정 연도
1985
소재지
종로구, 서울특별시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경복궁)
좌표
37.579201, 126.975569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경복궁 근정전 서북쪽 연못 안에 있는 경회루예요. 나라에 좋은 일이 생기거나 사신이 왔을 때 잔치를 베풀던 곳이죠. 임진왜란으로 불타 돌기둥만 남았다가,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함께 재건되었어요. 앞면 7칸, 옆면 5칠 규모의 2층 건물로, 돌다리 3개가 육지와 연결돼 있답니다. 지위에 따라 앉는 자리를 달리한 마루 구조가 특별하고, 간결하면서도 화려한 조선 후기 누각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귀한 문화유산이에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설명

경복궁 근정전 서북쪽 연못 안에 세운 경회루는,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경복궁을 처음 지을 때의 경회루는 작은 규모였으나, 조선 태종 12년(1412)에 연못을 넓히면서 크게 다시 지었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돌기둥만 남은 상태로 유지되어 오다가 270여 년이 지난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경회루도 다시 지었다. 연못 속에 잘 다듬은 긴 돌로 둑을 쌓아 네모 반듯한 섬을 만들고 그 안에 누각을 세웠으며, 돌다리 3개를 놓아 땅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앞면 7칸·옆면 5칸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누각건물에서 많이 보이는 간결한 형태로 꾸몄다. 태종 때 처음 지어진 경회루는 성종 때 고쳐지으면서 누각의 돌기둥을 화려하게 용의 문양을 조각하였다고 전해지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이후 고종대에 다시 지으면서 지금과 같이 간결하게 바깥쪽에는 네모난 기둥을, 안쪽에는 둥근기둥을 세웠다. 1층 바닥에는 네모난 벽돌을 깔고 2층 바닥은 마루를 깔았는데, 마루의 높이를 3단으로 각각 달리하여 지위에 따라 맞는 자리에 앉도록 하였다. 경복궁 경회루는 우리 나라에서 단일 평면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누각으로, 간결하면서도 호화롭게 장식한 조선 후기 누각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소중한 건축 문화유산이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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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khs.go.kr) · AI 해설: claude-haiku-4-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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