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 초상 사진
국보239회화조선 효종 2년(1651)

송시열 초상

宋時烈 肖像

서울특별시 용산구

기본 정보

지정 등급
국보239
분류
회화
제작시대
조선 효종 2년(1651)
지정 연도
1987
소재지
용산구, 서울특별시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좌표
37.524041, 126.980350

설명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우암 송시열(1607~1689) 선생의 초상화이다. 송시열 선생은 조선의 대표적 성리학자로 평생 주자학연구에 몰두하여 율곡 이이의 학통을 잇는 기호학파의 주류였다. 그는 논리적이고 힘있는 문장과 서예로도 평판이 높았다. 이 초상화는 세로 89.7cm, 가로 67.6cm로 비단바탕에 채색하여 그린 반신상이다. 머리에는 검은색 건을 쓰고 유학자들이 평상시에 입는 옷인 창의를 걸치고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다. 과장되게 표현된 거구의 몸체와 개성적인 눈썹 그리고 깊게 패인 광대뼈의 주름에서는 학식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얼굴은 엷게 채색한 다음 갈색 선으로 주름을 그렸고 옷의 주름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이 초상화의 오른쪽 위에는 송시열이 1651년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지은 글이 해서체로 쓰여 있으며, 중앙 위쪽에는 숙종이 1707년 정몽주의 초상화에 헌정한 어제시가 예서체로 쓰여 있는데 ‘정묘조’라는 기록이 함께 보인다. 그러나 위의 두 기록은 화면 위에 기록된 시기가 확실하지 않고, 서로 시차도 있어서 이 작품의 제작시기를 추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간결한 옷주름의 표현, 얼굴과 복식에 음영이 사용되지 않은 점 등 17세기 초상화의 특징이 보이므로 17세기로 제작시기를 특정하기도 하지만, 후자의 기록을 근거로 17세기 초상화를 잘 모사한 18세기 후기 이후의 이모본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송시열이 죽은 뒤 그를 받들고 추모하는 사람들에 의해 전국 각지에 많은 영당과 서원이 건립되었다. 그곳에 봉안하기 위해 많은 이모본들이 제작되었고 그 가운데 다수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초상화는 그 중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대표작으로 조선시대 유학자 초상의 면모와 특징을 대변하고 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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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문화재청 오픈API (ch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