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이문원 측우대 사진
국보331유적·탑1782년(조선 정조 6년)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

昌德宮 摛文院 測雨臺

서울특별시 종로구

기본 정보

지정 등급
국보331
분류
유적·탑
제작시대
1782년(조선 정조 6년)
지정 연도
2020
소재지
종로구, 서울특별시서울 종로구 효자로 12, 국립고궁박물관 (세종로,국립고궁박물관)
좌표
37.578800, 126.977000박물관 위치 기준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지금으로부터 약 240년 전, 정조 임금의 명에 따라 창덕궁에 세워진 측우대예요. 빗의 양을 재는 이 기구는 대리석으로 정성스럽게 만들어졌고, 유려한 글씨도 중앙의 뛰어난 장인이 새겼어요. 조선은 1442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빗을 정확히 재는 측우기를 만들었어요. 이 측우대는 그 오래된 전통이 조선 후기까지 계속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귀중한 물건이랍니다. 우리 선조들의 과학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알려주는 국보죠.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설명

국보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昌德宮 摛文院 測雨臺)’는 1782년(정조 6) 정조의 명에 의해 창덕궁 규장각의 부속 건물인 이문원(摛文院) 앞에 설치되었다. 석재는 조선시대 왕실유물에 많이 쓰인 대리석(당시는 대리암으로 불림)으로, 잘 다듬어 유려하게 새긴 글씨 또한 중앙의 장인이 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문원 측우대는 1910년경까지 원래 자리에 있다가 이후 경성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창경궁 명정전, 덕수궁 궁중유물전시관을 거쳐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보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는 1442년(세종 24) 조선에서 농업에 활용하고자 세계 최초로 측우기와 측우대를 제작한 이후 조선 후기에도 전통이 면면이 이어져왔음을 보여주는 유물로서,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와 함께 국보로 지정해 우리나라 전통과학의 우수성과 그 위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릴 가치가 충분하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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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khs.go.kr) · AI 해설: claude-haiku-4-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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