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천 청제비
永川 菁堤碑
경상북도 영천시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국보 제351호
- 분류
- 유적·탑
- 제작시대
- ① (앞)청제축조비-536년(신라 법흥왕 23), (뒤)청제수리비-798년(신라 원성왕 14) ② 청제중립비-1688년(조선 숙종 14)
- 지정 연도
- 2025년
- 소재지
- 영천시, 경상북도— 경북 영천시 도남동 산7-1번지
- 좌표
- 35.925965, 128.940530Kakao 주소 변환
설명
‘영천 청제비’는 신라 때 조성 이래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청못’ 옆에 세워진 비석으로 받침돌과 덮개돌 없이 자연석에 비문을 새긴 2기의 비석이다. 청제축조・수리비와 청제중립비로 구성된 이 비석은 세 시기에 걸쳐 청제의 조영 및 수리와 관련된 내용을 새긴 비석으로, 자연재해를 극복하는 토목 기술과 국가 관리 체계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청제축조비와 청제수리비는 모양이 일정치 않은 하나의 돌 앞뒷면에 내용을 새겼는데, 위쪽이 얇고 아래쪽이 두꺼운 형태이다. 청제축조비는 536년(법흥왕 23) 청제를 처음 조성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비문은 10행으로 각 행의 글자 수는 9~12자이다. 서체는 고졸하고 비정형적이며 자유분방한 6세기 신라 서풍의 전형에 해당한다. 청제수리비는 798년(원성왕 14) 청제의 수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비문은 12행으로 각 행의 글자 수는 4~16자이다. 서체는 통일신라의 세련된 서체와 달리 청제축조비의 신라 고유 서풍을 계승하였다. 두 면의 비문 대부분은 판독이 가능할 정도로 양호한 상태이다. 바로 옆의 청제중립비는 1688년(숙종 14) 청제축조・수리비가 땅에 묻혀 있었던 것을 다시 일으켜 세운 사실을 담고 있다. 서체는 조선의 일반적인 해서와 다른 신라의 고졸한 서풍을 반영하고 있다. ‘영천 청제비’는 청제의 축조 과정과 수리 과정, 왕실(국왕) 소유의 제방 관리 및 보고 체계 등을 기록함으로써 신라의 정치 및 사회・경제적 내용을 연구・확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는 점, 또한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운 고비석으로서 한 비석에 시기를 달리하는 비문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희귀한 사례라는 점, 조성 이래 현재까지 원 위치에서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점에서 국보로 승격하여 보존・관리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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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문화재청 오픈API (ch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