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주 종가 문적 사진
보물1002서적·기록물

권주 종가 문적

權柱 宗家 文籍

경상북도 안동시

기본 정보

지정 등급
보물1002
분류
서적·기록물
지정 연도
1989
소재지
안동시, 경상북도경상북도 안동시 퇴계로 1997 (도산면, 한국국학진흥원)
좌표
36.568354, 128.729357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조선 성종~연산군 때 문신 권주(1457~1505) 종가에 전해 내려온 고문서와 책 9종 14점이에요. 권주는 1480년 문과에 급제해 도승지, 충청도관찰사 등을 지냈지만, 폐비 윤씨 사약을 받든 일로 화를 입어 결국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났답니다. 15~16세기에 작성된 문과급제 교지, 관찰사 임명 교서, 재산을 나눠준 분재기 등 4종 7점의 고문서와, 성균관 유생들의 글을 모은 『동방록』을 비롯한 5종 7책의 책이 남아 있어요. 특히 권주가 직접 쓴 책들은 필체가 훌륭해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답니다.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안동시의 다른 국가유산

설명

조선 성종 때부터 연산군 때까지 문신 권주(1457∼1505) 선생의 종손가에 소장된 고문서와 전적이다. 총 9종 14점이다. 권주는 1480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주서, 공조정랑 등을 거쳐 승정원 도승지, 충청도관찰사 등의 벼슬을 지냈다. 성종 13년(1482)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을 때 사약을 받들고 갔다는 이유로 벼슬을 빼앗겼으나, 임무에 따랐을 뿐이라는 이유로 사형을 면하고 귀양을 떠났다. 그러나 1505년 6월 다시 그 문제가 불거져나오자 결국 사약을 받고 죽었다. 성품이 검소하고 단아하였으며, 맡은 직무에 최선을 다하였다. 고문서로는 15∼16세기 이전에 작성된 것으로 문과급제를 알리는 교지, 권주가 충청관찰사였을 때 받은 교서, 관찰사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유서, 자식에게 재산과 노비를 나누어주면서 작성한 분배기록인 분재기로 총 4종 7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적으로는 성균관 생원, 진사들의 시문을 모은 『동방록』, 권주 선생이 직접 손으로 쓴 편지글들을 모아놓은 『경수첩』, 『선세수찰』등 총 5종 7책이 있다. 크기는 연도와 내용에 따라 다르다. 이 가운데 고문서는 15∼16세기 이전에 쓰여진 것으로 경제사연구의 역사적 자료가 되며, 전적류는 당시 사회상황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특히 권주가 직접 쓴 책들은 그 필체가 훌륭하여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위치

지도를 불러오는 중…

지도에서 이 위치 보기 →

이곳을 방문하셨나요?

로그인 후 현장에서 GPS로 방문 인증하면 내 여정에 스탬프로 기록됩니다. (QR 인증은 추후 도입)

내 여정 보기 →

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오류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