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
龍仁 瑞鳳寺址 玄悟國師塔碑
경기도 용인시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보물 제9호
- 분류
- 서적·기록물
- 제작시대
- 고려시대
- 지정 연도
- 1963년
- 소재지
- 용인시, 경기도— 경기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 산110번지
- 좌표
- 37.337786, 127.038758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창건 기록은 없지만 절터 규모로 보아 큰 절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서봉사 자리에 남은 탑비예요. 15세에 출가해 부석사 주지를 지내다 명종 8년(1178) 53세로 입적한 현오국사를 기리기 위해 명종 15년(1185)에 세워졌답니다. 왕이 크게 슬퍼하며 국사로 삼고 '현오'라는 시호를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화강암 비받침 위에 점판암 비몸돌을 얹은 단출한 모습으로, 비받침과 비몸 윗부분을 비스듬히 잘라 마무리했어요. 부도는 흔적조차 없이 비석만 남았지만, 간략하면서도 정갈한 고려 후기 석비 양식을 잘 보여준답니다.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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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서봉사의 창건에 대한 기록은 없고 절터의 크기로 보아 아주 큰 규모의 절로 추정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절에서 떠내려오는 쌀뜨물이 10리나 흘러내려와 왜적이 물을 따라 올라가서 절을 불태웠다고 한다. 이곳은 탑비의 비각을 세우는 공사를 하던 도중에 기록이 남아있는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서봉사의 옛터임이 밝혀졌다. 명종 15년(1185)에 세워진 이 탑비는 현오국사(玄悟國師)의 행적을 후대에 알리고자 만들어졌다. 보통 부도와 함께 건립되는데 절터에 부도의 흔적은 없고 이 비석만 남아 있다. 화강암의 비받침위에 점판암으로 만들어진 비몸돌이 놓여있는 단촐한 모습이다. 비받침부분의 윗면은 4변을 비스듬히 잘라내었고, 비문이 새겨지는 비몸에도 윗부분의 양 귀끝을 사선으로 접듯이 잘라서 마무리하였다. 비문에 의하면, 현오국사는 15세에 불일사(佛日寺)에서 승려가 된 후 부석사(浮石寺)의 주지를 거쳐 명종 8년(1178) 53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왕이 크게 슬퍼하여 국사(國師)로 삼고 시호를 ‘현오(玄悟)’라 한 뒤 동림산 기슭에서 화장하였다. 그 외에도 글을 지은 이와 건립연대 등이 기록되어 있다. 전체적인 조형이 간략한 고려 후기 석비의 새로운 양식을 보여준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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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