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무예제 사진
보물1079서적·기록물

홍무예제

洪武禮制

서울특별시 용산구

기본 정보

지정 등급
보물1079
분류
서적·기록물
지정 연도
1991
소재지
용산구, 서울특별시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좌표
37.524041, 126.980350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중국 명나라 태조가 유학자들을 모아 편찬하게 한 예법서, 홍무예제예요. 고려 후기부터 조선 태종 때까지 예조의 의식에 널리 활용됐답니다. 세종 때 이 예제를 두고 논란이 일자 허조 등에게 명해 홍무예제를 참작하고 여러 예서를 모아 국조오례의를 새로 편찬하도록 했어요. 성종 5년(1474) 신숙주와 정척 등이 국조오례의를 완성한 뒤로는 홍무예제가 점차 쓰이지 않게 됐답니다. 성종 이전 조선과 중국의 외교 실태와 예제를 규명하는 중요한 자료예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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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예(禮)에 관련하여 편찬된 책이다. 중국 명나라 태조는 천하를 평정하고 당시 각지의 유학자들을 모집하여 예서(禮書)를 편찬하게 하였는데,『홍무예제』는 그 중 하나이다. 『홍무예제』는 당시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태종 때까지 예조의 의식 등에 많이 활용되었으나 세종 때에 이 예제에 대해 이의와 논란이 많아 당시의 문신인 허조 등에게 제례작업을 명하자 당시 우리나라에서 관행되어 온『홍무예제』를 참작하고 그밖에 『두씨통전』, 『동국고금상정예』등 이전에 예에 관련하여 만들어진 서적을 수집하여 『국조오례의』를 제정토록 하였다. 이후 성종 5년(1474) 신숙주, 정척 등에 의해 비로소 완성, 발행하였다. 이후 『국조오례의』가 발행되자 점차 『홍무예제』는 소멸되어 갔다. 이 『홍무예제』를 통해 성종 이전 우리나라와 중국의 외교실태와 예제(禮制)를 규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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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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