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
(羅州 丁村古墳 出土 金銅飾履)
전라남도 나주시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보물 제2125호
- 분류
- 공예
- 제작시대
- 5세기
- 지정 연도
- 2021년
- 소재지
- 나주시, 전라남도— 전라남도 나주시
- 좌표
- 시·군·구 대표점만 있어 정확한 지점 좌표를 표시하지 않습니다. 지도 마커는 나주시 대표점에 표시됩니다.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전남 나주 정촌고분 1호 석실에서 2014년 발굴된 백제시대 금동신발이에요. 5~6세기 영산강유역 대형 고분 중 도굴되지 않아 매장 원형을 알 수 있는 정촌고분에서, 좌우 한 쌍이 거의 훼손 없이 출토됐답니다. 발등 부분의 용머리 장식은 현존 삼국시대 금동신발 중 유일한 사례예요. 얇은 금동판 4장을 못으로 연결하고 육각문·용문·인면조신 등을 투각한 정교한 공예품이랍니다. 고창 봉덕리 금동신발보다 조금 늦은 5세기 후반 제작으로, 무령왕릉 금동신발로 이어지는 과도기를 보여줘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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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은 삼국 시대 대형 분구묘인 정촌고분의 1호 석실에서 2014년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가 발굴한 것이다. 5∼6세기 무렵 영산강유역에는 복암리 고분군, 정촌고분, 영동리 고분군 등 대형 고분이 축조되었는데, 그 중 정촌고분은 1,500여 년 전 백제‧마한 문화를 가장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고분이면서 도굴 피해를 입지 않아 매장의 원형을 알 수 있어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무덤이다. 정촌고분 1호 석실 제3목관에서 발견된 금동신발은 좌우 신발 한 쌍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완벽한 모습으로 출토되었으며, 특히, 발등 부분에 부착된 용머리 장식은 현존 삼국시대 금동신발 중 유일한 사례로 주목을 받아 왔다. 최근에는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가 수행한 과학적 분석 결과, 신발의 주인공이 40대 여성으로 추정되기도 하였다. 이 금동신발은 형태와 제작기법, 문양 등에서 고창 봉덕리 출토 금동신발과 매우 유사하다. 얇은 금동판 4장으로 바닥판과 좌우 옆면판, 발목깃판을 만들어 서로 작은 못으로 연결하였고 문양을 투각해 세부를 선으로 묘사한 방식 등 고대 금속공예 기법이 잘 반영되어 있다. 아울러 육각문, 용문, 인면조신(人面鳥身), 괴수문, 연화문 등 사후영생(死後永生)을 기원한 고대인들의 사후세계관이 반영된 듯한 다양한 문양이 정교하고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어 조형적으로도 매우 우수하다.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은 고창 봉덕리 금동신발에 비해 조금 늦은 5세기 후반 경에 제작되어 6세기 무령왕릉 출토 금동신발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단계를 보여주는 공예품이자 5∼6세기 백제의 사상과 미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작품이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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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