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전등사 대웅전 사진
보물178건축물조선 광해군 13년(1621)

강화 전등사 대웅전

江華 傳燈寺 大雄殿

인천광역시 강화군

기본 정보

지정 등급
보물178
분류
건축물
제작시대
조선 광해군 13년(1621)
지정 연도
1963
소재지
강화군, 인천광역시인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 전등사 (온수리) / (지번)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35 전등사
좌표
37.632094, 126.484766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아도화상이 세웠다고 전하는 강화 전등사의 대웅전으로, 조선 선조·광해군 때 큰 불로 모두 타버린 뒤 광해군 13년(1621) 원래 모습을 되찾았어요. 앞면 3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다포 양식이랍니다. 네 모서리 기둥 위에는 벌거벗은 사람이 처마를 받치고 있는 조각이 있는데, 공사비를 가로챈 주모에게 벌을 주려 목수가 새겼다는 전설이 전해져요. 두 곳은 두 손으로, 두 곳은 한 손으로 받쳐 익살스러운 모습이랍니다. 조선 중기 이후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예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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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아도화상이 세웠다고 전하지만 고려 중기까지의 역사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조선 선조 38년(1605)과 광해군 6년(1614)에 큰 불이 일어나 절이 모두 타버려, 그 이듬해 다시 짓기 시작하여 광해군 13년(1621)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석가여래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광해군 13년(1621)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장식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네 모서리기둥 윗부분에는 사람 모습을 조각해 놓았는데 이것은 공사를 맡았던 목수의 재물을 가로챈 주모의 모습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재물을 잃은 목수가 주모의 나쁜 짓을 경고하고 죄를 씻게 하기 위해 발가벗은 모습을 조각하여 추녀를 받치게 하였다는 것이다. 두 곳의 추녀 밑에는 두손으로 처마를 받치며 벌을 받고 있는 모양새이고 나머지 두 곳은 한 손으로만 받치고 있는데, 마치 벌을 받으면서도 꾀를 부리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우리 선조들의 재치와 익살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의 능숙한 조각 솜씨를 엿볼 수 있고, 조선 중기 이후의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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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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