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호 초상 사진
보물1504회화1787년

유언호 초상

兪彦鎬 肖像

서울특별시 관악구

기본 정보

지정 등급
보물1504
분류
회화
제작시대
1787년
지정 연도
2006
소재지
관악구, 서울특별시서울 관악구 관악로 1,103동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신림동,서울대학교)
좌표
37.462351, 126.950453

설명

조선후기의 학자 유언호(兪彦鎬, 1730~1796)의 58세 때의 초상화이다. 유언호는 본관이 기계(杞溪), 자는 사경(士京), 호는 칙지헌(則止軒)으로 정조 연간의 대표적인 문신이다. 세손 시절부터 정조를 잘 보좌하여 총애를 받았으며, 정조가 왕위에 오른 이후 규장각 창설에 참여하여 규장각 직제학을 역임했고 좌의정에까지 올랐다. <유언호초상>은 그림 왼편에 “崇禎三丁未 畵官 李命基 寫”란 기록이 있어 1787년에 이명기(李命基)가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이명기는 정조의 어진(御眞) 제작에도 참여했던 당대 최고의 화가 중 한 사람이었다. 또, 그림의 윗부분에는 정조의 어평(御評)이 기록되어 있다. <유언호초상>은 오사모에 흉배가 딸린 단령포 차림의 관복입상 그림으로, 유복이나 평상복 차림의 입상은 없지 않으나 관복정장의 입상 초상화로는 첫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입상이면서 왼팔 소매 끝을 쥔 오른손이 살짝 보이도록 그린 것은 이명기 작<강세황 71세상>과 비슷하다. 이명기의 다른 초상화들과 마찬가지로 안면 표현의 입체감이 선명하고 옷주름의 음영이 뚜렷하다. 소맷자락 아래로 짙은 농묵표현과 관복의 밑으로 화문석에 떨어진 그림자의 묘사가 두드러진다. 또 “容體長闊 視元身減一半”, 곧 “얼굴과 몸의 길이와 폭은 원래 신장과 비교할 때 절반으로 줄인 것이다”란 글을 기술하고 있어, 유언호의 실제 키와 그림의 키 배율을 계산하여 그린 작품으로 주목된다. <유언호초상>은 유언호의 후손인 기계유씨(杞溪兪氏) 문중에서 보관해 오다가 1997년 12월 11일 규장각에 기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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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문화재청 오픈API (ch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