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윤탁 한글영비 사진
보물1524서적·기록물조선시대(중종31년(1536년))

서울 이윤탁 한글영비

서울 李允濯 한글靈碑

서울특별시 노원구

기본 정보

지정 등급
보물1524
분류
서적·기록물
제작시대
조선시대(중종31년(1536년))
지정 연도
2007
소재지
노원구, 서울특별시서울 노원구 하계1동 12번지
좌표
37.645436, 127.076754

설명

이 비석은 묵재(&#40665;齋) 이문건(李文楗)이 부친인 이윤탁(李允濯)의 묘를 모친인 고령(高靈) 신씨(申氏)의 묘와 합장하면서 1536년에 묘 앞에 세운 묘비이다. 이 묘비에는 앞면과 뒷면에 각각 묘주의 이름과 그 일대기가 새겨져 있고, 왼쪽과 오른쪽에도 한글과 한문으로 경계문이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의 특징적 가치는 비석 왼쪽 면에 쓰여진 한글 경고문인데, 우리나라 비문으로서는 한글로 쓰인 최초의 묘비문으로 알려져 있어 그 역사적 가치가 높으며 국어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한글영비’는 국어생활사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첫째, 중종 31년(1536) 당시 한글이 얼마나 널리 알려져 있는가를 증명해주는 자료이다. 둘째, ‘한글영비’에 새겨진 한글의 서체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직후의 서체, 즉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체와 <용비어천가> 서체의 중간형의 성격을 지닌다. 셋째, 이 비석의 글은 비석의 이름인 ‘영비(靈碑)’를 제외하고는 국한 혼용이 아닌 순 국문으로 쓰여 있다. 본격적으로 한글로만 쓴 문헌은 18세기에나 등장하나 이 ‘한글영비’는 16세기에 이미 순국문으로만 쓰인 문장이라 할 수 있다. 넷째, ‘한글영비’는 언해문이 아닌 원 국문 문장이다. 15세기 이후 한문 원문을 번역한 언해문이 한글자료의 주종을 이루었으나 이 ‘한글영비’는 짧은 문장이긴 하나 처음부터 우리말로 쓰인 문장으로, 한글이 한문 번역도구가 아닌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직접 전달하는 도구로 변화하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다섯째, ‘한글영비’에 쓰인 국어 현상은 이 당시의 언어를 잘 반영하여 당시 국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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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문화재청 오픈API (ch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