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필적 하피첩 사진
보물1683-2서적·기록물1810년(순조 10, 정약용 49세)

정약용 필적 하피첩

丁若鏞 筆蹟 霞帔帖

경기도 파주시

기본 정보

지정 등급
보물1683-2
분류
서적·기록물
제작시대
1810년(순조 10, 정약용 49세)
지정 연도
2010
소재지
파주시, 경기도경기도 파주시 헤이리로 30 (탄현면, 국립민속박물관 개방형수장고)
좌표
37.579800, 126.983100박물관 위치 기준

설명

『정약용 필적 하피첩(丁若鏞 筆蹟 霞帔帖)』은 서문에 적혀있듯이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되고 얼마 후 아내 홍씨부인이 바래고 해진 치맛감 여러 폭을 부쳐온 것을 잘라서 두 아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구절을 직접 짓고 써준 것이다. 제작연대는 경오년 즉 1810년(순조 10) 7월과 9월로 그의 나이 49세 때였다. 이 서첩의 수량은 원래 네 첩이었으나 현재 세 첩만 알려져 있다. 현재의 《하피첩》3첩은 그 하나가 결락된 셈인데, 각첩 표지에 ‘하피첩’이란 제목은 좀 남아 있으나 그 아래의 ‘첩 순서’[帖次]는 탈락되어 몇 번째 첩이 없는지를 알 수 있다. 《하피첩》3첩은 그 중 두 첩에 각각 1810년 7월[首秋]과 1810년 9월[菊秋]의 서문이 있어 강진 유배시절인 1810년 기년작이란 점에 의미가 있다. 또 원래의 네 첩 모두가 전하지는 않지만 현재의 세 첩 중에는 "두 아들에게 경계하는 구절을 지어 써주다[作戒語以遺二子”ㆍ“寫戒子句]"라는 서문이 있어 정약용이 직접 짓고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강진 유배 이후 정약용의 전형적인 행초서풍을 보여주며, 특히 세번째 첩에 실린 전서(篆書)와 예서(隸書)는 다른 서첩에서 좀처럼 볼 수 없다.

위치

지도를 불러오는 중…

이곳을 방문하셨나요?

방문 체크하면 내 여정에 기록됩니다. (GPS·QR 인증은 추후 도입)

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문화재청 오픈API (ch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