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린 고신왕지 사진
보물746서적·기록물조선 태종 2년(1402)

성석린 고신왕지

成石璘 告身王旨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기본 정보

지정 등급
보물746
분류
서적·기록물
제작시대
조선 태종 2년(1402)
지정 연도
1983
소재지
진안군, 전북특별자치도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좌표
시·군·구 대표점만 있어 정확한 지점 좌표를 표시하지 않습니다. 지도 마커는 진안군 대표점에 표시됩니다.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태종과 이성계를 화해시킨, 조선 태종 2년(1402) 성석린 고신왕지예요. 성석린을 영의정부사겸판개성유후사사로 임명한 사령장이랍니다. 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익대좌명공신에 봉해졌어요. 고려말과 조선초의 관직이 함께 쓰인 점이 흥미롭답니다. '조선국왕지인'이라는 옥새가 찍혀 있어요. 조선 초기 관직체계와 서체 연구에서 매우 귀중하게 평가받는 자료랍니다.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진안군의 다른 국가유산

설명

성석린 고신왕지(成石璘 告身王旨)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문신을 지낸 성석린(1338∼1423)에게 내려진 왕지이다. 성석린은 공민왕 6년(1357)에 과거에 급제하여, 국자학유, 사관 등을 거쳐 조선시대에는 성균관사성, 제학, 영의정 등의 벼슬을 했다. 태조 이성계의 옛 친구로 태조와 태종 이방원을 화해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이 왕지는 태종 2년(1402) 11월 17일 성석린을 영의정부사겸판개성유후사사(領議政府使兼判開城留後司事)로 임명하면서 내린 사령장이다. 성석린은 태종 1년(1401) 제 2차 왕자의 난(방간의 난)을 평정하고 태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로로 익대좌명공신 3등에 녹훈되어 창녕부원군(昌寧府院君)에 봉해졌으며, 태종 2년 10월에는 영의정부사로 임명되었다. 이 왕지에 쓰인 관직명을 보면 고려말 조선초에 관직이 함께 같이 쓰이고 있으며, 그 위에는 발급한 년월일과 ‘조선국왕지인’이라는 옥새(임금의 도장)가 찍혀있다. 판체는 초서체이며, 종이질은 장지(壯紙:우리나라에서 만든 두껍고 질긴 큰 종이)이고, 가로 61.1㎝, 세로 32㎝ 정도의 크기이다.

위치

지도를 불러오는 중…

지도에서 이 위치 보기 →

이곳을 방문하셨나요?

로그인 후 현장에서 GPS로 방문 인증하면 내 여정에 스탬프로 기록됩니다. (QR 인증은 추후 도입)

내 여정 보기 →

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오류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