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세종 영릉 신도비
서울 世宗 英陵 神道碑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보물 제1805호
- 분류
- 서적·기록물
- 제작시대
- 조선시대(1452년(문종 2))
- 지정 연도
- 2013년
- 소재지
- 동대문구,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로 56-
- 좌표
- 37.590032, 127.043238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정인지가 짓고 안평대군이 쓴, 조선시대(1452년) 서울 세종 영릉 신도비예요. 문종 2년 세운 세종의 일대기 비석이랍니다. 비신 표면이 심하게 부식돼 내용은 대부분 알아보기가 매우 어려운 상태예요. 정인지와 안평대군의 이름 일부만 남아 있답니다. 이수는 원형을 거의 간직하고 있어요. 조선 초기 왕의 신도비 연구에서 매우 귀중한 기준자료로 널리 평가받는답니다.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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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서울 세종 영릉 신도비(서울 世宗英陵神道碑)’는 1452년(문종 2)에 세운 것이다. 세종 영릉 신도비는 조선시대 문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국기를 튼튼히 다졌던 제4대 임금 세종의 생애와 업적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그의 일대기를 담아 세운 비이다.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에 크게 공헌했던 문신 정인지(鄭麟趾, 1396~1478년)가 글을 짓고,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로 당대의 대표적 서예가였던 안평대군 이용(李瑢, 1418~1453년)이 글씨를 썼다. 비록 비신의 표면이 심하게 부식·박락되어 금석문의 내용을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상태이지만 “···겸성균관대사성 신 정인(兼成均館大司成臣鄭麟)···”과 “···신 용 봉교서(臣瑢奉敎書)···”와 같은 중요한 부분이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비신과 한 몸으로 제작된 이수(螭首)는 원형을 거의 간직하고 있어, 조선 초기 왕의 신도비를 비롯하여 조선시대에 세워진 많은 신도비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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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