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창 오대산사고
平昌 五臺山史庫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사적 제37호
- 분류
- 유적·탑
- 제작시대
- 조선시대
- 지정 연도
- 1963년
- 소재지
- 평창군, 강원특별자치도—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산1번지
- 좌표
- 37.756278, 128.572436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조선왕조실록과 왕실 족보를 보관하던, 평창 오대산사고예요.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 하나로, 임진왜란으로 전주사고본만 남고 나머지가 불타자 선조 39년(1606) 다시 만들어 보관했답니다.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으로 춘추관본이 또 불타, 이후 정족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 4곳에 보관했어요. 오대산본은 일본에서 거의 소실됐답니다. 물·불·바람이 침입하지 못한다는 상서로운 자리에, 실록각과 선원각이 다시 지어진 정말 귀중한 유적이에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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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왕실의 족보인 『선원보략(璿遠譜略)』을 보관하기 위해 지었던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 하나이다. 『실록』은 조선 전기에 서울의 춘추관을 비롯하여 충주·전주·성주에 나누어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1592)으로 전주사고에 보관하고 있던 것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불타 없어졌다. 선조 39년(1606)에 다시 만들어 춘추관·태백산·묘향산·강화 마니산·오대산에 사고를 짓고 보관하였다. 그러나 인조 때 이괄의 난(1624)과 병자호란(1636)으로 『춘추관본』이 불타 없어졌고, 그 후 정족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에 보관하게 하였다.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은 현재 서울대학교에 보관되어 있고, 『적상산본』은 한국전쟁 중 없어졌으며, 『오대산본』은 일본에서 거의 불타 없어졌다. 오대산 사고가 있던 곳은 원래 물·불·바람이 침입하지 못한다는 상서로운 곳이었다고 한다. 사고를 지을 당시에는 실록각·선원각·별관, 그리고 사고를 지키던 수호사찰로 영감사가 있었으며, 참봉 2명과 군인 60명, 승려 20명이 사고를 관리하고 지켰다. 한국전쟁으로 모두 불에 탔으나 1992년에 사각과 선원보각으로 이루어진 사고의 건물을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br/><b>※(오대산사고지 → 평창 오대산사고)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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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