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 행주산성
高陽 幸州山城
경기도 고양시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사적 제56호
- 분류
- 유적·탑
- 제작시대
- 삼국시대 ∼ 조선시대
- 지정 연도
- 1963년
- 소재지
- 고양시, 경기도—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 산26번지
- 좌표
- 37.599941, 126.824754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으로 널리 알려진, 고양 행주산성이에요.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흙으로 쌓은 산성이랍니다. 내성과 외성의 2중구조로, 한강과 창릉천이 자연 방어막을 이뤄요. 선조 26년(1593) 왜병과의 전투에서 부녀자들이 치마에 돌을 날라 승리를 거뒀고, 이때 '행주치마'라는 말이 생겼다고 전해진답니다. 삼국시대 토기부터 조선시대까지 오랜 사용 흔적이 남은, 임진왜란 3대 대첩의 무대인 귀중한 유적이에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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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임진왜란(1592) 때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으로 널리 알려진 곳으로 흙을 이용하여 쌓은 토축산성이다. 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험한 절벽을 이용하면서 펼쳐지는 넓은 평야를 포함하고 있는 것은 삼국시대 전기의 산성 형식과 같다. 성은 동서로 약간 긴 형태로 1㎞ 가량의 테뫼식 산성이다. 산꼭대기를 둘러싼 작은 규모의 내성과 골짜기를 에워싼 외성의 2중구조를 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동남쪽으로는 창릉천이 산성을 에워싸고 돌아, 자연적으로 성을 방어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초기에 백제의 땅이었으며, 서해안과 연결된 수로의 거점지역으로 남북 교통의 요충지대이다. 성 안에서는 삼국시대의 토기조각을 비롯하여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 많이 나오고, 물고기뼈무늬를 새긴 기와조각도 발견되고 있어서 고려시대까지도 사용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로, 선조 26년(1593)에 왜병과의 전투에서 성 안의 부녀자들이 치마에 돌을 날라 병사들에게 공급해 줌으로써 큰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부녀자들의 공을 기리는 뜻에서 행주라는 지명을 따서 ‘행주치마’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이 산성은 한강 유역에 있는 다른 산성들과 함께 삼국시대 이후 중요한 방어요새의 역할을 한 곳으로, 1603년에 세운 ‘행주대첩비’가 있으며, 권율 장군을 모시는 충장사가 있다. <br/><b>※(행주산성 → 고양 행주산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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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