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사진
사적118유적·탑조선 세종 19년(1437)

진주성

晋州城

경상남도 진주시

기본 정보

지정 등급
사적118
분류
유적·탑
제작시대
조선 세종 19년(1437)
지정 연도
1963
소재지
진주시, 경상남도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본성동, 진주성)
좌표
35.190354, 128.080128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된, 진주성이에요. 원래 토성이었던 것을 고려 우왕 5년(1379) 석축으로 고쳐 쌓았답니다. 선조 25년(1592) 진주목사 김시민이 3,800명으로 3만여 왜적을 물리친 진주성대첩을 이뤘어요. 이듬해엔 10만 왜군에 함락돼 7만 민관군이 순절하는 비운을 겪었답니다. 이후 경상우도 병마절도영과 도청이 자리했어요. 성 안엔 촉석루, 창열사, 의기사가 남아 있는, 임진왜란 항쟁의 정말 상징적인 유적이에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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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진주성은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되어 있는 진주의 성지(聖地)이다. 본시 토성이던 것을 고려조 우왕 5년(1379)에 진주목사 김중광(金仲光)이 석축하였다. 조선조 선조 24년(1591) 7월, 경상감사 김수(金수:1537∼1615)는 진주성을 수축하고 외성(外城)을 쌓았다. 동 25년(1592) 10월, 임진왜란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1554∼1592)이 3,800명의 군사로서 3만 여명의 왜적을 물리쳐 진주성대첩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다음 해인 계사년(1593) 6월에는 전년의 패배를 설욕코자 10만 여명이 또 침략하여 끝내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순절하는 비운을 겪었다. 동 37년(1604)에는 합포(合浦, 마산(馬山))의 우병영을 진주성으로 옮겨 온 이래로 경상우도 병마절도영이 있었고, 고종 32년(1895) 5월부터는 진주관찰부, 건양 원년(1896) 8월부터는 경상남도관찰사의 감영이 있었다. 그리하여 1925년까지는 경상남도의 도청이 있었다. 성의 둘레는 1.7㎞이다. 성내(城內)에는 촉석루·창열사·의기사·북장대·서장대·영남포정사·국립진주박물관·진주성임진대첩계사순의단·촉석문·공북문·호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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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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