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삼랑성 사진
사적130유적·탑삼국시대

강화 삼랑성

江華 三郞城

인천광역시 강화군

기본 정보

지정 등급
사적130
분류
유적·탑
제작시대
삼국시대
지정 연도
1964
소재지
강화군, 인천광역시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산41번지
좌표
37.631258, 126.487576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있는, 강화 삼랑성이에요. 정족산성이라고도 불린답니다. 삼국시대 성의 구조를 지녀 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돼요. 영조 15년(1739) 다시 쌓으며 남문에 종해루를 세웠답니다. 현종 1년(1660)엔 조선왕조실록을 정족산사고로 옮겨 보관했어요. 병인양요 때 이곳 동문과 남문에서 프랑스군 160여 명을 물리친 곳으로도 유명한, 국난 극복의 정말 상징적인 유적이에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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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정족산성이라고도 하며 단군의 세 아들이 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있어 삼랑성이라 부른다. 이 성이 만들어진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고려가 1259년 삼랑성 안에 궁궐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 전에 이미 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곽이 쌓여져 있는 모습을 보면 보은의 삼년산성이나 경주의 명활산성처럼 삼국시대 성의 구조를 찾을 수 있으므로,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성으로 추측된다. 고려 때 보수공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영조 15년(1739)에 성을 다시 쌓으면서 남문에 문루를 만들고 ‘종해루’라고 하였다. 조선 현종 1년(1660) 마니산의 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성 안에 있는 정족산사고로 옮기고,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을 함께 지었다. 그러나 지금은 둘 다 없어지고 전등사만 남아있다. 이곳은 고종 3년(1866)의 병인양요 때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을 해오던 160여 명의 프랑스군을 무찌른 곳으로도 유명하다. <br/><b>※(삼랑성 → 강화 삼랑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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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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