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고려궁지 사진
사적133유적·탑고려시대

강화 고려궁지

江華 高麗宮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기본 정보

지정 등급
사적133
분류
유적·탑
제작시대
고려시대
지정 연도
1964
소재지
강화군, 인천광역시인천 강화군 강화읍 북문길 42 (관청리)
좌표
37.752329, 126.484443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고려가 몽골 침략에 맞서 고종 19년(1232)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1234년에 지은 궁궐과 관아 건물이에요. 정궁 외에 행궁·이궁·가궐 등 많은 궁궐이 있었답니다. 39년간 쓰이다 1270년 강화조약으로 다시 수도를 옮기며 허물어졌죠. 조선 인조 9년 옛 터에 행궁을 지었지만 병자호란 때 함락됐답니다. 이후 다시 지은 강화유수부 건물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거의 불타 없어져, 지금은 동헌과 이방청만 남았어요. 끊임없는 외세 침략에 맞선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을 보여주는 곳이랍니다.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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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1232)에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1234년에 세운 궁궐과 관아건물이다. 정궁 이외에도 행궁·이궁·가궐을 비롯하여 많은 궁궐이 있었다. 정문은 승평문이었고 양쪽에 삼층루의 문이 두 개가 있었으며 동쪽에 광화문이 있었다. 39년동안 사용되었고 1270년 강화조약이 맺어져 다시 수도를 옮기면서 허물어졌다. 조선시대에도 전쟁이 일어나면 강화도를 피난지로 정했다. 조선 인조 9년에 옛 고려 궁터에 행궁을 지었으나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함락되었다. 그후 다시 강화유수부의 건물을 지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거의 불타 없어져 지금은 동헌과 이방청만이 남아있다. 이 곳은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과 국난 극복의 역사적 교훈을 안겨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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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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