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오릉 사진
사적172유적지신라시대(서기 3~111년경)🌍 유네스코 세계유산 · 경주역사유적지구(2000년 등재)

경주 오릉

慶州 五陵

경상북도 경주시

기본 정보

지정 등급
사적172
분류
유적지
제작시대
신라시대(서기 3~111년경)
지정 연도
1969
소재지
경주시, 경상북도경북 경주시 탑동 67번지
좌표
35.823069, 129.208462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경주시내 남서쪽에 자리한 경주 오릉은 신라 초기 박씨 임금들의 무덤이에요.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시조 박혁거세, 남해왕, 유리왕, 파사왕과 혁거세의 왕후인 알영왕비 등 5명이 묻혀 있다고 해요.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의 형태로, 1호 무덤이 높이 10m로 가장 크답니다. 2호 무덤은 표주박 모양으로 봉분이 두 개인 2인용 무덤이에요. 『삼국유사』에는 혁거세 왕비가 큰 뱀의 방해로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각각 묻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오릉(五陵)'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비롯되었어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설명

경주시내 평지 서남쪽에 위치한 4기의 봉토무덤과 1기의 원형무덤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 신라 초기 4명의 박씨 임금과 혁거세의 왕후인 알영왕비 등 5명의 무덤이라 되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혁거세왕이 임금자리에 있은지 62년 만에 하늘로 올라갔다가 7일 후에 몸이 흩어져 땅에 떨어지자 왕비도 따라 죽으니, 사람들이 같이 묻으려고 했으나 큰 뱀이 방해해서 몸의 다섯부분을 각각 묻었는데, 그것을 오릉(五陵) 또는 사릉(蛇陵)이라 했다고 한다. 내부구조는 알 수 없으나 무덤의 겉모습은 경주시내에 있는 다른 삼국시대 신라무덤과 같이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으로, 1호 무덤이 높이 10m로 가장 크며, 2호 무덤은 표주박형으로 봉분이 두 개인 2인용 무덤이다. 이러한 대형 원형 봉토무덤은 신라에서는 4세기 이후 등장하는 것으로 박혁거세 당시의 무덤 형식은 아니다. <br/><b>※(신라오릉 → 경주 오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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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khs.go.kr) · AI 해설: claude-haiku-4-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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