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선릉과 정릉
서울 宣陵과 靖陵
서울특별시 강남구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사적 제199호
- 분류
- 유적지
- 제작시대
- 조선 연산군 1년(1495)
- 지정 연도
- 1970년
- 소재지
- 강남구, 서울특별시— 서울 강남구 선릉로100길 1 (삼성동)
- 좌표
- 37.507147, 127.051892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서울 선릉과 정릉은 조선 역대 왕들의 능이에요. 선릉은 성종과 그의 왕비 정현왕후가 함께 묻힌 곳인데, 같은 능역 안에서 서로 다른 언덕에 조성되어 있어요. 성종은 『경국대전』 같은 중요한 법전을 완성했던 임금이죠. 정릉은 중종의 능으로, 중종은 연산군 시대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 인쇄 기술을 발전시켰어요. 특히 1592년 임진왜란 때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후 정성스럽게 복구되었답니다.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설명
선릉(宣陵)은 조선 9대 성종(1457~1494, 재위 1469~1494)과 세 번째 왕비 정현왕후 윤씨(1462~1530)의 능이다. 성종은 재위기간 동안 『경국대전』과 『대전속록』, 『국조오례의』를 완성하여 반포하였고, 선비들을 등용하여 기존의 훈구세력과 국정의 균형을 이루게 하였다. 정현왕후는 1473년(성종 4) 성종의 후궁이 되었고, 1480년(성종 11)에 왕비가 되었다. 선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태로 앞에서 봤을 때 서쪽 언덕이 성종, 동쪽 언덕이 정현왕후의 능이다. 정릉(靖陵)은 조선 11대 중종(1488~1544, 재위 1506~1544)의 능이다. 중종은 재위기간 동안 연산군 시절의 잘못된 정치와 제도를 바로 잡았고, 서적을 간행하여 인쇄 기술을 발전시켰다. 중종이 세상을 떠난 후 서삼릉에 있는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희릉 서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여 능의 이름을 정릉으로 바꿨으나, 1562년(명종 17)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가 장경왕후의 능(희릉)은 그대로 두고 중종의 능(정릉)만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선조실록』에 의하면 선릉과 정릉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능을 파헤쳐 관까지 불에 타는 변을 당하여, 1593년(선조 26) 두 능을 다시 수리하고 장례를 치렀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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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khs.go.kr) · AI 해설: claude-haiku-4-5 기반 사전 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