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정릉
서울 貞陵
서울특별시 성북구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사적 제208호
- 분류
- 유적지
- 제작시대
- 조선 태종 9년(1409), 현종 10년(1669)
- 지정 연도
- 1970년
- 소재지
- 성북구,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성북구 아리랑로19길 116 (정릉동, 정릉)
- 좌표
- 37.601256, 127.007535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조선을 세운 태조의 두 번째 왕비 신덕황후 강씨의 능이에요. 신덕황후는 1392년 조선 건국 후 첫 왕비로 책봉되었지만, 아들 방석을 왕세자로 삼으면서 왕자의 난이 일어났어요. 세상을 떠난 후 처음엔 서울 중구 정동에 모셔졌다가, 태종 시대에 도성 안에 능이 있다는 이유로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답니다. 이후 1669년 신주를 종묘에 모시고 능을 다시 조성했어요. 문석인과 석양, 석호 등이 배치되어 있으니 꼭 보고 가세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설명
조선 1대 태조의 두 번째 왕비 신덕황후 강씨(? ~ 1396)의 능이다. 신덕황후는 강윤성의 딸로 고려의 풍습에 따라 태조의 경처(서울에서 결혼한 부인)가 되었다가, 1392년 조선 건국 후 최초의 왕비(현비)로 책봉되었다. 둘째아들 방석을 왕세자로 책봉시켜 정치적 기반을 닦았으나 이 일로 왕자의 난이 일어나 정치적으로 혼란하였다. 태조는 신덕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중구 정동에 조성하였으나, 태종이 왕위에 오른 후 1409년(태종 9) 도성 안에 능이 있다는 이유로 도성 밖 현재의 자리에 옮겼고, 남아있던 목재와 석물을 태평관太平館과 청계천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였으며, 태조의 왕비로 인정하지 않았다. 1669년(현종 10) 송시열 등의 상소로 신주를 종묘에 모시고, 정릉을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조성하였다. 능침은 추존된 왕비의 능제에 맞게 조성되어 병풍석과 난간석, 무석인을 생략하고 문석인과 석양, 석호 등을 배치하였다. 장명등과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만 옛 정릉에서 옮겨온 석물이고 나머지 석물들은 현종대에 다시 조성하였다. 이후 1899년(광무 3) 신덕고황후로 추존되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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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khs.go.kr) · AI 해설: claude-haiku-4-5 기반 사전 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