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광성보 사진
사적227유적·탑조선시대

강화 광성보

江華 廣城堡

인천광역시 강화군

기본 정보

지정 등급
사적227
분류
유적·탑
제작시대
조선시대
지정 연도
1971
소재지
강화군, 인천광역시인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23-1번지
좌표
37.664984, 126.530093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

덕진진, 초지진과 함께 강화해협을 지킨, 강화 광성보예요. 고려가 몽골에 대항해 강화로 도읍을 옮기며 1233∼1270년 강화외성을 쌓은 데서 유래한답니다. 효종 9년(1658) 광성보가 처음 설치됐어요. 1871년 신미양요 최대 격전지로, 조선군이 열세한 무기로 용감히 싸우다 대부분 순국했답니다. 순국한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와 신미순의총이 남아 있어요. 1976년 복원된, 나라를 지킨 정말 숭고한 희생의 현장이에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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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광성보는 덕진진, 초지진, 용해진, 문수산성 등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이다. 고려가 몽고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도읍을 옮기면서 1233년부터 1270년까지 강화외성을 쌓았는데, 이 성은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성으로 바다길을 따라 길게 만들어졌다. 광해군 때 다시 고쳐 쌓은 후 효종 9년(1658)에 광성보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숙종 때 일부를 돌로 고쳐서 쌓았으며,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 등 소속 돈대가 만들어 졌다. 영조 21년(1745)에 성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만들었는데 ‘안해루’라 하였다. 이곳은 1871년의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열세한 무기로 용감히 싸우다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순국하였으며 문의 누각과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이 파괴되었다. 1976년 다시 복원하였으며, 광성보 경내에는 신미양요 때 순국한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와 신미순의총 및 전적지를 수리하고 세운 강화전적지, 수리한 것을 기록한 비석 등이 건립되었다. <br/><b>※(광성보 → 강화 광성보)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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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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