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 병산서원
安東 屛山書院
경상북도 안동시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사적 제260호
- 분류
- 건축물
- 제작시대
- 조선 선조 5년(1572)
- 지정 연도
- 1978년
- 소재지
- 안동시, 경상북도—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번지
- 좌표
- 36.540580, 128.552605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안동 병산서원은 서애 유성룡을 기리기 위해 1572년에 세워진 곳이에요. 낙동강이 굽이치는 화산을 등지고 자리하고 있죠. 유성룡은 학문과 글씨로 유명했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 성곽 수축과 군비 확충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에요. 1614년에는 그의 위패를 모신 존덕사가 세워졌고, 1863년에 임금으로부터 '병산'이라는 이름을 받아 서원이 되었어요. 입교당, 동·서재, 만대루 등 여러 건물들이 있으며, 많은 학자를 배출한 교육의 중심지랍니다.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설명
서애 유성룡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안동에서 서남쪽으로 낙동강 상류가 굽이치는 곳에 화산(花山)을 등지고 자리하고 있다. 유성룡은 도학·글씨·문장·덕행으로 이름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에도 성곽 수축·화기제작을 비롯하여 군비확충에 힘써 많은 공을 세운 인물이다. 원래 풍악서당으로 풍산 유씨의 교육기관 이었는데, 유성룡이 선조 5년(1572)에 이곳으로 옮겼다. 그 후 광해군 6년(1614)에 존덕사를 세워 그의 위패를 모시고, 1629년에 그의 셋째 아들 유진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철종 14년(1863)에는 임금으로부터 ‘병산’이라는 이름을 받아 서원이 되었다. 서원내 건물로는 위패를 모신 존덕사와 강당인 입교당, 유물을 보관하는 장판각, 기숙사였던 동·서재, 신문, 전사청, 만대루, 고직사가 있다. 병산서원은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을 담당해 많은 학자를 배출한 곳으로,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남아 있었던 47개의 서원 중 하나이며, 한국 건축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유적이다. ※명칭변경: 병산서원 → 안동 병산서원(2011.07.28.) <세계유산등재: 한국의 서원(2019. 7. 6.)> ㅇ 유산지역: 소수서원(영주), 남계서원(함양), 옥산서원(경주), 도산서원(안동), 필암서원(장성), 도동서원(달성), 병산서원(안동), 무성서원(정읍), 돈암서원(논산) ㅇ 성리학과 관련된 한국의 문화적 전통의 탁월한 증거로 그 교육과 사회적 관습은 많은 부분 오늘날까지 지속됨. 서원은 중국에서 들어온 성리학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변형되고 있고 그 결과 그 기능과 배치, 건축적인 면에서 변화를 겪고 토착화되는 역사적 과정에 대한 특출한 증거임. ※세계유산적 가치(탁월한 보편적기준/OUV) 보유(기준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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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khs.go.kr) · AI 해설: claude-haiku-4-5 기반 사전 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