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여 정림사지
扶餘 定林寺址
충청남도 부여군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사적 제301호
- 분류
- 유적지
- 제작시대
- 백제시대
- 지정 연도
- 1983년
- 소재지
- 부여군, 충청남도—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54번지
- 좌표
- 36.278951, 126.915039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부여 정림사지는 백제가 부여를 도읍으로 삼던 시절(538~660년)의 중심 사찰이 있던 자리예요. 발굴할 때 기와에서 "고려 현종 19년(1028) 당시 정림사"라는 글씨가 발견되어, 백제 사찰 위에 고려시대에 다시 건물을 지었음을 알 수 있어요. 사찰의 주요 건물들이 남북으로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특이하게 복도의 평면이 사다리꼴 모양이랍니다. 백제 때 만들어진 5층 석탑과 고려시대의 석불좌상이 지금도 남아 있고, 발굴 때 백제 벼루, 토기, 흙 불상 등 여러 유물도 나왔어요. 중문 앞 연못도 정비되어 있습니다.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설명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시기(538-660)의 중심 사찰이 있던 자리다. 발굴조사 때 강당터에서 나온 기와에서 ‘태평 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太平八年 戊辰 定林寺 大藏唐草)’라는 글이 발견되어, 고려 현종 19년(1028) 당시 정림사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즉 고려시대에 백제사찰의 강당위에 다시 건물을 짓고 대장전이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림사의 주요 건물 배치는 중문, 오층석탑, 금당, 강당에 이르는 중심축선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놓이고, 건물을 복도로 감싸고 있는 배치를 하고 있다. 그러나 특이하게 가람 중심부를 둘러싼 복도의 형태가 정사각형이 아닌, 북쪽의 간격이 넓은 사다리꼴 평면으로 되어있다.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중문 앞의 연못이 정비되어 있고, 석불좌상을 보호하기 위한 건물은 1993년에 지어졌다. 백제 때에 세워진 5층석탑과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불좌상이 남아 있다. 출토유물로는 백제와 고려시대의 장식기와를 비롯하여 백제 벼루, 토기와 흙으로 빚은 불상들이 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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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khs.go.kr) · AI 해설: claude-haiku-4-5 기반 사전 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