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화 외성
江華 外城
인천광역시 강화군
기본 정보
- 지정 등급
- 사적 제452호
- 분류
- 유적·탑
- 제작시대
- 1233년
- 지정 연도
- 2003년
- 소재지
- 강화군, 인천광역시— 인천 강화군 선원면 선원면, 불은면, 길상면 일원(강화도 동해안 일대)
- 좌표
- 37.699873, 126.520344
AI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
✨ AI 해설고종이 강화도로 천도한 뒤 해안 방어를 위해 쌓은, 강화 외성이에요. 고종 20년(1233) 적북돈대부터 초지진까지 23㎞에 걸쳐 축조됐답니다. 몽고군의 상륙을 막는 가장 중요한 방어시설이었어요. 조선시대에도 계속 보수돼 병자호란 후 돌로, 영조 때는 벽돌로 다시 쌓았답니다. 오두돈 주변엔 벽돌로 쌓은 전축성이 남아, 수원 화성과 함께 전축성 연구에 정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유적이에요.
⚠ AI가 국가유산청 공식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래 공식 설명을 참고하세요.
강화군의 다른 국가유산
설명
강화외성은 고려 23대 고종이 1232년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한 뒤 고종 20년(1233) 해안 방어를 위해 적북돈대로부터 초지진까지 23km에 걸쳐 쌓은 성이다. 강화성은 내성·중성·외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산성이다. 외성은 동쪽 해안을 따라 쌓았는데 몽고군이 바다를 건너 공격하지 못하게 한 가장 중요한 방어시설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고종 24년(1237)에 강화외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조선시대에도 비상시에 국왕의 피난처인 도성(都城)의 외성(外城)으로 광해군 10년(1618)에 보수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숙종때 병자호란기(1636)에 허물어진 외성을 돌을 이용하여 다시 쌓았고 돈대(墩臺)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영조때 강화유수 김시혁(金始爀)이 비가 오면 성의 흙이 흘러내려 나라에 건의하여 영조 19년(1743)에서 이듬해에 걸쳐 벽돌을 이용하여 다시 쌓았다고 한다. 2001년 동양고고학연구소에서 실시한 오두돈 주변의 전축성 구간에 대한 지표조사 결과에 의하면, 뻘층을 기초로 머리돌을 올리고 그 위에 대형석재로 석벽의 중심을 삼고 그 위에 머리돌을 올리고 다시 전돌을 여러 단 쌓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성은 높이 20척, 폭 5척이며, 6개의 문루(조해루·복파루·진해루·참경루·공조루·안해루)와 암문 6개소, 수문 17개소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강화외성은 고려 후기∼17세기 후반 도성의 구조와 축성기법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 성은 벽돌로 개축한 전축성(塼築城)이 오두돈 주변(남측)에 남아 있어 수원 화성(사적)과 더불어 전축성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위치
지도를 불러오는 중…
이곳을 방문하셨나요?
로그인 후 현장에서 GPS로 방문 인증하면 내 여정에 스탬프로 기록됩니다. (QR 인증은 추후 도입)
이미지: 공공누리 (khs.go.kr) · 데이터 출처: 국가유산청 오픈API (국가유산포털 ↗) · AI 해설: claude-sonnet-5 기반 사전 생성


